[아시아 여성 최고지도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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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인도네시아의 새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아시아에 또 한 명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메가와티에 앞서 정권을 잡은 아시아의 현직 여성 대통령이나 내각수반으로는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대통령과 필리핀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을 들 수 있다.

◇ 닮은 꼴 메가와티와 아로요=이 가운데 메가와티보다 꼭 6개월 앞서 취임한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정치적 배경이나 대통령으로 취임하기까지의 과정이 메가와티와 매우 흡사해 자주 비교대상으로 거론된다.

전직 대통령의 딸로 부친의 후광을 업고 대중적 인기를 누려 야당 지도자로 부각됐다가 전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탄핵되면서 대통령직을 이어 받았다는 점이 우연의 일치치곤 너무 닮은 꼴이다.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의 국부로 추앙받는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다. 메가와티는 아예 수카르노의 딸이란 뜻의 '수카르노푸트리' 를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서민 가정에선 수카르노와 메가와티의 사진을 함께 걸어두는 집이 많다.

아로요 역시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전 대통령의 딸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아로요 대통령을 부를 때 남편의 성(아로요)보다 아버지의 성(마카파갈)으로 더 즐겨 부른다는 사실은 그의 인기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은 것임을 입증한다.

두 사람은 전임자를 탄핵대에 세운 야당과 권좌에서 버티려는 전임 대통령과의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대통령이 됐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여성 대통령을 선택한 데엔 전임자의 부패와 대비되는 깨끗한 이미지를 갖춘 데다 치열한 권력투쟁으로 인한 갈등을 봉합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가문의 음덕=스리랑카의 쿠마라퉁가 대통령 또한 부모의 음덕을 입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제로 개헌한 뒤 1994년 취임한 그는 아버지가 솔로몬 전 총리며 어머니는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로 40년간 스리랑카를 통치했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다.

이같은 사례는 지금은 물러난 아시아의 여성 대통령 또는 내각 수반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인도의 인디라 간디 전 총리는 네루 초대 총리의 외동딸이다. 파키스탄의 민주화 지도자로 94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베나지르 부토 역시 전직 대통령의 딸이었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암살 당한 야당 지도자인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의 인기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었다.

이밖에 90년 총선에서 승리, 집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군부 쿠데타로 밀려난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상징 아웅산 수치는 독립영웅의 딸이다.

이처럼 아시아의 여성 지도자들은 부친.남편 등 가문의 명성을 정치적 입신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여권(女權)의 상징인가=현재 여성이 대통령 또는 내각수반인 나라는 핀란드.아일랜드.뉴질랜드 등 모두 9개국이다.

이 중 아시아에 3개국이 있다면 꽤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이 수치가 곧바로 아시아 여성의 권리가 강하기 때문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명문 가문이 대를 이어 정치적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는 후진성의 한 단면으로 비춰지고 있다. AFP통신은 "아시아 정치권에서 남녀평등은 아직 요원하다" 고 분석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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