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같던 최경주, 딱 한 번 삐끗해 공동 4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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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속 최경주 벙커 샷의 달인 최경주가 13번 홀 벙커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 최경주는 이 홀 그린사이드 벙커에서 세 번째 샷한 볼이 그린에 짧게 떨어져 3퍼트 보기로 상승세가 꺾였다. [오거스타 AFP=연합뉴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타이거 우즈는 첫 티샷을 옆 홀 페어웨이로 보냈고 벙커에서 한 번에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리커버리 샷도 했지만 5번 홀까지 보기가 3개나 됐고 7번 홀(파 4)에서는 이글을 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엄청난 관중의 함성과 탄식에 앞뒤 조 선수들까지 흔들릴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같은 조에서 경기한 최경주는 전혀 요동하지 않았다. 마치 터널 속에 들어간 기차처럼 앞만 보고 경기했다. 전반, 그는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았다. ESPN방송의 해설자는 “최경주가 존 속에 있다(IN THE ZONE)”고 했다. 우리 식 골프 일상어로 표현하면 ‘그분이 오셨다’쯤 된다. 아무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완벽한 리듬을 유지하며, 홀은 훨씬 커 보이는 극도의 집중력을 갖춘 상태를 말한다.

핸디캡 1인 10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핀 1.5m에 붙여 버디를 잡았을 때가 하이라이트였다. 최경주는 4타를 줄여 12언더파 공동 선두로 나섰다. 다른 경쟁자들의 샷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최경주는 샷감과 집중력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이때 내기를 했다면 모두들 최경주에게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부터 선두라는 중압감이 그를 누른 것 같다. 아멘 코너의 첫 홀인 11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할 때 그의 표정은 전보다 굳어 보였고 공은 홀에 미치지 못했다. 7m쯤 되는 거리였지만 훨씬 더 어려운 퍼트도 쑥쑥 집어넣던 그의 퍼팅 감으로 보면 넣을 수 있는 거리였다.

13번 홀이 치명적이었다. 3라운드까지 모두 버디를 잡았던 이 홀에서 보기를 했다. 그는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 조금 서둘렀다. 두 번째 샷 준비에 들어갔는데 관중석에서 함성이 들려 다시 어드레스한 뒤 쳤는데 벙커에 빠졌고, 한 번도 연습을 해보지 않은 벙커여서 실수했다”고 말했다. 벙커 샷이 너무 짧았고 퍼트마저 세 번이나 했다. 최경주는 다음 홀에서 또 보기를 했다.

4라운드 내내 함께 경기한 최경주와 우즈는 똑같이 11언더파 공동 4위로 경기를 끝냈다. 18번 홀 그린으로 올라오면서 72홀을 함께 싸운 전우는 잠시 손을 잡고 우정을 나눴다. 최경주는 “갤러리가 타이거를 열렬하게 응원해 중압감이 많은 상황에서 내 샷과 내 전략대로 게임한 것은 귀중한 수확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우즈도 자기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파를 할 때마다 다가와 ‘아주 잘했다’고 말해줄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했다. 우즈는 “지난 수년 동안 최경주와 많은 경기를 했는데 영어가 많이 늘어 대화가 좀 더 길어졌다. (최경주의) 샷도 좋았고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우승 갈림길 파5 13번 아멘홀

최경주, 투온 노리다가 보기
미켈슨, 나무 사이 뚫고 버디

72홀을 함께 돈 최경주와 타이거 우즈가 마지막 홀에서 서로 손을 다정하게 잡고 걸어가고 있다. [오거스타 AP·로이터=연합뉴스]

◆최경주 : 220야드 정도를 남겨놓고 2온을 시도했다가 볼이 그린 뒤 벙커에 빠졌다. ‘벙커샷의 달인’ 최경주에게도 쉽지 않은 곳이다. 벙커 쪽에서 보면 그린은 내리막이며 그 앞에는 개울이 흐른다. 벙커샷은 간신히 그린에 올라갔고 내리막 퍼트의 부담 때문에 3퍼트로 보기를 범했다.

◆미켈슨 : 티샷은 오른쪽 소나무 숲에 떨어졌다. 앞에는 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있었다. 나무 사이의 간격은 2m 남짓, 핀까지 거리는 200야드. 미켈슨은 레이업하지 않고 6번 아이언으로 나무 사이를 뚫어 핀 1.2m 옆에 공을 세웠다. 이글은 실패했지만 버디를 잡아 3타 차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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