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안보와 자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천안함 침몰 이후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이 나라는 오직 하나의 가치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보인다. 야당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그들은 어느 나라를 대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 나라 군은 의심하고, 적인 북한은 감싸준다. 국회의원들에게는 군사 비밀도 없고, 안보도 눈에 없어 보인다. 무슨 발언이든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이고, 민주주의라고 믿는 모양이다. 침몰 원인을 둘러싸고 인터넷상에 오가는 말들을 보면 이 나라는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넘쳐난다. 소통이 공동체에 활기를 넣어 주는 중요한 덕목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도가 넘어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 신문과 방송 역시 언론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어떤 장면이든 모조리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일까? 언론 역시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보도가 되면 적에게 유리할 수 있는 군사기밀, 공연히 군의 사기만 저하시킬 우려가 있는 사안들은 언론 스스로가 판단해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책임 있는 언론이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투명성·공개성이 유일한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생존 장병들의 기자회견은 군의 명예에 치명상을 입혔다. 환자복을 입고 눈을 아래로 깔고 죄인처럼 나타난 그들, 눈물을 훔쳐야 하는 초라한 함장…. 그들이 죄인인가?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용사들을 범죄인 다루듯 공개 신문하는 나라, 이런 나라를 위해 누가 전장에 나가 죽으려 하겠는가? 국민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는 여론만 유일한 잣대인가? 여론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자유인가?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안보는 여론만을 따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국방부 장관은 국방 책임자로서 판단과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안보를 담당한 국방의 관계자들은 여론과는 상관없이 군으로서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진상조사위원장을 민간인에게 맡긴 것은 군을 불신하는 결정이다. 이 역시 여론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물론 군도 완벽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공개하고, 군사비밀과 관련된 사안들은 밝힐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군 통수권자까지 군을 불신한다면 누가 군을 지휘할 것인가. 안보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천안함 사건은 우리 안보가 중대하게 침해된 사건이다. 우리는 이런 국가적 위기를 앞에 놓고 자유와 안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민주와 안보는 때로 대립적인 가치일 수 있다. 민주적 가치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운다면 그로 인해 안보가 침해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나라의 존립을 위해선 동시에 안보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헌법에서 대통령의 책무는 민주체제의 수호자인 동시에 군 통수권자다. 민주의 가치를 지켜내는 동시에 나라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여론이 아무리 뭐라 해도 군 통수권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군의 영역이 있다면 보호해줘야 한다. 언론이나 국민 역시 균형된 판단을 해야 한다. 한 가지 가치만 취한다면 다른 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자유가 넘쳐 방종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나라도 지키고 성숙한 민주주의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