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장 신 풍속[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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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대입 시장에선 독서논술교육 수요가 위축된 반면, 초·중학생 교육시장에선 비약적인 증가세다. 입학사정관전형이 고교 입시에 도입되면서 독서능력평가, 자기소개서·학습계획서·포트폴리오 작성, 서술·논술형시험 출제, 면접방식 다양화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학생·학부모는 “교과, 비교과에 독서논술까지 더해졌다”며 학업부담 증가를 호소한다. 학생·학부모들의 요구와 교육시장 선점을 위해 변화하고 있는 학교와 학원가를 찾아봤다.

“자녀의 독서이력은 나의 몫” 독서코치로 변신

중1 딸을 둔 김시영(44·가명·서울 목동)씨는 지난달부터 경기대대학원 독서지도학과에서 일주일에 두 번 야간수업을 듣는다. 김씨는 “아이를 직접 지도하기 위해 수강을 결심했다”며 “최근 독서논술 교육기관에 초5~중2 자녀를 둔 내 또래 부모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내신 공부와 비교과 활동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자녀에게 장기간이 요구되는 독서포트폴리오까지 맡기는 건 불안하다는 생각에 부모들이 직접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H독서 논술교육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수강생이 독서지도사 양성강좌에 20%, 자기주도학습지도사 강좌에 50% 증가했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맞춤형 독서지도를 해주려는 부모들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채수미(42·가명·경기분당 이매동)씨는 중2아들이 다니던 학원에서 영어·수학 외에 올해 신설된 독서논술 강좌를 추가 신청했다. 학생별 진로와 연계된 독서이력을 쌓아 입학사정관전형을 준비시켜 준다고 해서다. 채씨는 “아이가 밤에는 특목고 대비 자기소개서·학습계획서 쓰기 수업을 듣는다”며 “주요 교과수업에 논술을 함께 신청하는 것이 요즘 학원 수강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한 특목고 입시학원 설명회에 참석한 나민영(45·가명·서울 대치동)씨는 “학원가의 입시 대비법을 취합하기 위해 부모들마다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니느라 바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외고는 영어독서, 과학고는 창의탐구독서, 자사고는 국어·수학독서로 학교 특징별 독서법을 나눠 입시를 준비한다”고 덧붙였다.

조기유학과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챙겨 차별화를 꾀하는 학부모들도 생겼다. 때론 관찰자·속기사가 돼 아이의 공부과정을 스크랩하기도 한다. 중2 아들을 민사고나 하나고에 진학시키려는 채지연(41·가명·서울 목동)씨는 영어독서이력을 만들고 있다. 3년 전 미국 유학 때 학교 과제물로 제출했던 영시·영어수필·영어글짓기상 등을 독서포트폴리오로 정리하는 중이다. 채씨는 아들의 관심분야인 경제·경영 관련 독서도 시킬 계획이다. 대학생 수준의 책이지만 독서감상문을 쓰고 관련분야를 체험학습하는 독후활동을 시켜 선발전형에서 돋보이게 한다는 전략이다. 채씨는 “학업소개서와 자기소개서에 쓸 내용을 만들기 위해 아이의 공부 과정을 틈틈이 기록한다”며 “학교나 학원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하면 차별화된 입학전형 자료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Y유학업체 관계자는 “요즘엔 어학연수와 독후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는 추세”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링컨 전기를 읽었다면 유학 현지에선 링컨기념관, 남북전쟁유적지 견학 등 체험학습·봉사활동을 병행해 독후활동을 하는 식이다. 입학사정관전형이 중시하는 활동(관심사)의 연계성·지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학부모 요청 빗발쳐 학교에서 독서교육 개설도

특목고 진학실적을 중시하는 학교들은 개학과 동시에 독서·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 강남 H중은 수업 전후 운영하던 형식적인 독서시간을 독서교육으로 바꿔 중1~2학년까지 확대시켰다. 학생별 독서이력 관리를 통해 자기주도학습능력을 지도한다. 목동 M중은 중간고사 수행평가로 독서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다. 진학실적에 민감한 학부모들을 의식해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분당 N중은 독서토론논술장을 만들어 교육방송 시청감상문·독서이력을 쓰게하고 있다.

분당 S중은 수준별 독서토론반을 개설, 방과후학교와 토요일 연계활동으로 확대했다. 자기주도학습태도를 길러주려고 점심시간엔 독서교실도 운영한다. 올 초 사서자격 보유자를 보조교사로 채용하기도 했다. 방과후학교와 창의재량수업에선 제2외국어도 가르친다. 특목고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올해 부쩍 늘어난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며 “요구는 많지만 실제 참여는 적다”고 말했다. 분당지역 일부 학교에선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폐강하기도 했다. 황수경(41·가명·경기 분당 백현동)씨는 “프로그램이 부실해 신청자가 적었다는 소문”이라며 “대부분 학원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학교 프로그램 불신에 학생·학부모 학원 몰려

일선 교사들은 “독서는 스스로 해야지 부모나 교사가 만들어주면 전형 의도에 어긋나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경계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입시 개편안이 발표됐는데 실체는 없고 소문만 무성하니, 방향과 틀을 제시하는 학원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학원가에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교육 신상품들을 재빨리 선보이고 있다. 분당 C학원은 부서를 정규교과부·심화비교과부·컨설팅부로 재편해 3일은 교과내신, 나머지 1~2일은 비교과 또는 ‘비교과+독서교육’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이 학원 컨설팅실장은 “봉사활동·체험학습 등 비교과까지 관리할 계획”이라며 “개인별 학습계획서·학습이력철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첨삭·관리 상품도 등장했다. 대치동 J어학원은 학생이 쓴 자기소개서·학습계획서를 인터넷에서 실시간 첨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의료·법조·경영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채용해 진로상담 멘토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학원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진학과 진로를 함께 상담해주고 장기 관리하기 위한 조치”라며 “교육 비중도 수업 위주에서 첨삭 컨설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 간 이합집산도 벌어지고 있다. 목동 H학원은 부족한 독서프로그램을 채우기 위해 E독서논술전문업체와 연합했다. 이 업체는 대입논술 전문이었으나 H학원과 합작, 올해부터 초·중 독서논술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진설명]1.경기도 분당 C특목고입시학원에서 중학생들이 올해 신설된 입학사정관전형을 대비해 자기소개서와 학습계획서를 쓰기 위한 독서논술교육 수업을 받고 있다 2.서울 대치동 J어학원 강사가 특목고 준비생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고 있다.

< 특별취재팀=박정식·송보명·정현진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

< 사진=김진원·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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