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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가 나서는 한국, 장군이 나서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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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과거 국방부를 출입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국방부의 해명이 들리는 듯하다. “오죽하면 우리가 이러겠느냐.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을 맞아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현실을 납득시키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었다”고. 이해는 간다. 아직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우리 군이 지나치게 섣부른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이 이번 비극에서 표출된 국민의 불신을 우리 사회나 언론의 미성숙, 군사 상황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의 부족한 소양으로 돌리려 한다면 이는 본말(本末)이 뒤집혀도 크게 뒤집힌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상황과 비교할 때 그렇다.

워싱턴에서 한국 기자가 미국 정부 관리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거대한 장벽에 낙담하지 않은 기자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미군 장성들은 예외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에 나선다. 한국처럼 공보 담당 몇 사람만 나서는 게 아니다. 7일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의 로버트 모엘러 부사령관(해군)이 전화회의(콘퍼런스 콜)를 통해 해당 지역 작전 상황을 전했다. 2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선 쿠웨이트 미군 기지가 TV 화면에 연결됐다. 이어 현장을 책임진 윌리엄 웹스터 미 3군사령관(육군)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달 25일엔 로버트 윌러드 미 태평양 군사령관이 직접 외신기자빌딩을 찾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전략에 대해 브리핑했다. 지난 1년 동안 워싱턴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도 두 차례 만났다.

미국 장성들이 수시로 언론에 나서는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 중요 사안의 진행 상황에 대해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책임자가 국민에게 보다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뜻이다. 국가 안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 보면 천안함 사건에서 우리 군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이유 또한 너무나 명백하다.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는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직후 사고 해역을 책임진 해군 2함대 사령관이 나서 상황을 설명했더라면 의혹이 지금처럼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일선의 지휘관들이 평소 브리핑 경험을 많이 쌓았더라면 급한 불을 끈다고 군사기밀을 마구 공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최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미 중부군 사령관이 유력한 차기 미국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적합성 여부를 떠나 미국인들이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한 그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군 장성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