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상품 국제표준 인정 왜 중요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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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주 중앙일보를 보면 우리나라 대표식품 중의 하나인 김치가 세계 공인을 받았다는 기사가 크게 실렸어요.

김치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왜 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국제기구에서 김치를 공인한 것은 김치에 사람의 호적과 같은 표준을 만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방법과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을 김치라고 한다' 는 식이지요.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것을 표준이라고 합니다.

상품마다 표준이 없으면 이름은 같은데 내용이 다른 상품이 마구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요. 덩달아 손실도 많아지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볼까요.

김치를 생각해봐요. 배추를 절여 고춧가루.마늘.생강.파 등 여러 양념을 섞은 뒤 젖산 발효가 되도록 숙성하기 때문에 약간 맵고 짠맛을 내지요.

일정기간이 지나 삭으면 감칠맛을 더합니다. 그런데 만약 미국 식품회사가 배추에 치즈나 간장을 섞어놓고 김치라고 판다면 우리 김치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혼란스럽겠지요.

실제로 일본이 김치와 비슷한 식품을 만들어 '기무치' 라는 이름으로 외국에 수출하고 있어요.

기무치는 배추를 발효시키지 않은 단순한 겉절이 형태여서 우리나라 김치와는 딴판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김치 맛을 모르는 미국이나 유럽 사람은 기무치가 김치인 줄 알고 즐겨 먹는대요.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김치 상품에 대한 국제적 표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CODEX는 우리나라 김치와 일본의 기무치를 놓고 평가한 결과 이번에 한국 김치에 손을 들어준 거죠.

이제 일본의 기무치는 우리나라 방식으로 담그지 않고는 한국의 김치와 맛이 같다거나 김치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한답니다.

김치 표준이 공인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앞으로 연간 1억달러어치의 김치를 더 수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표준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알겠지요.

어떤 상품이 이렇게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으면 많은 나라에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지금 표준전쟁을 치르고 있답니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나 상품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데 실패하면 기업이든 나라든 막대한 손실을 본다는 얘기지요.

실제로 우리나라 모 전자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4㎜ 초소형 캠코더를 만들었는데 일본의 소니사가 이미 8㎜ 캠코더를 국제표준이 인정받은 터여서 기술이 사장되고 말았답니다.

또 한때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미국의 모토로라는 디지털 휴대폰이 국제표준으로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해 1위 자리를 핀란드의 노키아에 내주고 말았어요. 지금 고전하는 것도 그 탓이 커요.

미국이 매년 2백억~3백억달러를 표준화에 투자하는 이유랍니다.

국내 수출업체들도 수출 대상 국가의 표준을 따기 위해 매출액의 10%를 매년 씁니다.

한국표준협회 이승배 부회장은 "아무리 뛰어난 상품이라도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고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국제표준화기구(ISO) 산하에는 부문별로 7백59개의 기술위원회가 있습니다. 각 위원회는 일이 있을 때마다 회의를 열어 특정 기술이나 상품의 국제표준을 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술위원회 정회원 가입률이 36%밖에 되지 않아 국내 기술이나 상품을 국제표준으로 정하는데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표준인 KS(Korean Stan

dard) 제품이나 기술의 86%가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 한 원인이지요. 정부에서조차 KS에 맞춰 각종 규격을 통일하지 않고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해요.

지난해 산업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정부 부처가 관리하고 있는 규격이 1만7천가지나 되는데, 이중 KS와 일치하는 규격은 1천1백개(6.5%)에 불과해요.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8천억원을 투자해 국내외 표준에 맞는 상품이나 기술을 많이 개발한다고 하니 기대해 봐야지요.

표준은 꼭 상품에만 필요한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동사무소나 시청, 거리에서 '올바른 계량단위를 사용합시다' 라는 현수막을 봤을 거예요.

계량단위의 국제표준인 미터법을 사용하자는 정부의 호소문이에요. 이는 무게단위로 ㎏이나 g을 쓰면 되는데 근이나 돈.파운드 등을 사용하거나, 넓이단위로 평방m나 평방㎞를 사용하면 될걸 평이나 마지기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1999년 9월 미국에서 발사한 화성탐사선이 갑자기 우주공간에서 실종됐어요. 1천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쏘아올린 터라 미국 정부에선 난리가 났지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원인이 지상에서 우주선을 조정하던 담당기술자가 무게단위로 국제표준인 ㎏을 사용하지 않고 파운드를 사용하는 바람에 수치가 잘못 입력됐고, 그 결과 우주선이 궤도를 벗어나 사라진 거랍니다. 표준단위를 사용하지 않은 탓에 순식간에 1천억원을 날린 셈이지요.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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