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부터 도전 33년 만에 현대 가문의 숙원 이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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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꿈을 드디어 이뤘다.”

올 1월 5일 현대제철 1고로 화입식(고로에 첫 불을 붙이는 것) 당시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감격스러워하며 한 말이다. 그는 전날 폭설을 뚫고 충남 당진에 내려가 현대제철소 내 숙소에서 하루를 묵어가며 화입식에 참석했다. 그가 이렇게 일관제철소에 큰 의미를 둔 것은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현대그룹 33년의 꿈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 철강제품을 만드는 일관제철소 설립을 추진했지만 여러 차례 고배를 마셨다. 1977년 정부가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이은 제2 제철소 추진 당시 현대는 야심차게 종합제철소 설립계획안을 냈다. 하지만 78년 10월 제2제철 사업자는 포스코로 결정됐고,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세워졌다. 그래도 현대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현대는 78년 인천제철을 인수하며 철강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고로가 없어 그동안 철광석보다 비싼 고철(철스크랩)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만을 가동해 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96년 정몽구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또다시 “고로 제철소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해 11월 정부는 또다시 공급 과잉을 내세워 불허했다. 계속되는 좌절에도 정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97년 코리아서밋(경제정상회의)에서 고로 제철소 진출 의사를 재천명했고, 독일의 티센크루프스틸(TKS) 제철소 등을 직접 둘러본 후 인천제철 내에 고로제철소 연구를 위한 기술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제철소 설립 서명운동을 벌인 끝에 97년 10월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와 하동군 갈사만에 제철소를 짓는 기본합의서 조인식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중앙정부의 불허로 무산됐다. 현대는 2000년 강원산업·삼미특수강, 2004년엔 한보철강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2006년 1월 고로제철소 설립 인가를 받아 그해 10월 기공식을 했다.

정 회장은 8일 준공식에서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제철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대제철은 조강능력 기준으로 현재 세계 30위권이다. 그러나 이날 준공식을 한 제1고로와 올 11월 완공할 제2고로를 합하면 연간 800만t의 생산체제를 갖춘다. 이를 기존 전기로 조강생산량 1150만t과 합하면 세계 12위권 철강사로 부상하게 된다.

당진=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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