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에이즈 폭풍' 예방이 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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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81년 6월 5일 에이즈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5명의 남성 동성애자들에게서 발견된 이후 20년간 세계 5천8백여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 벌써 2천2백여만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25~27일 열린 유엔 에이즈 특별총회에선 1백80여개국의 정상과 대표들이 모여 에이즈 예방과 퇴치를 위한 지구촌 차원의 공동협력과 아프리카 극빈국에 대한 지원기금 조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유엔이 특정 질병을 의제로 다룬 것은 56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매년 70억~1백억달러의 에이즈 퇴치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13억달러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는가 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스웨덴.노르웨이.네덜란드 및 빌 게이츠재단 등에서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초당 5명이, 청소년의 경우도 분당 5명 꼴로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 지금은 아프리카가 최대의 에이즈 발생지역이지만 아시아지역 감염률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강력한 예방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아시아가 아프리카를 능가하는 최대 에이즈 발생지역이 될 것이라고 유엔에이즈(UNAIDS)는 보고서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84년부터 에이즈가 발생한 태국에서는 85년엔 주로 남성 동성애자와 양성애자에게서 발견돼 이들을 상대한 여성들이 감염되기 시작했고, 88년에는 혈관 마약 사용자 사이에 급속히 확산됐다. 89년에는 여성 접대부들에게 번졌다. 90년에는 이들을 상대한 젊은이와 군인들이, 91년부터는 접대부에게서 감염된 남편을 통해 아내가 감염되고, 이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감염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된 아이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져 그 부모가 감염자임이 드러나는가 하면 남편을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에이즈 환자임을 확인하기도 한다. 최근엔 마약 사용으로 인한 감염자까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말까지 총 감염자는 1천4백39명. 적은 수이긴 하나 그 확산 과정이 에이즈 감염자가 1백만명을 넘는 태국과 흡사해 안심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태국이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에이즈가 더욱 창궐했음을 상기할 때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서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에이즈는 누구든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이 질병은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의 혈액 등 체액을 통해서만 옮겨지므로 그 전파 경로만 차단하면 된다. 문제는 본인이 감염사실을 모르고, 상대는 예방 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에이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과 같은 빠른 매체를 악용한 청소년 매매춘 등 그릇된 성문화의 범람은 에이즈 확산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빨리 예방백신이나 완치제를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전파 경로와 예방법에 대해선 소홀하거나 관심조차 없는 이가 많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폭풍전야' 라고 말한다. 일반인에게는 더 많은 홍보와 교육이, 감염자.환자에게는 부담없는 치료 환경이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 모두가 에이즈 예방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에이즈 폭풍' 을 잠재울 수 있다.

李 昌 雨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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