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우환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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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구상에서 제일 잘나가는 국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세계 주민 중 십중팔구는 중국을 꼽을 것이다. 오죽하면 용어도 많을까. G2는 이미 국제용어다. 세계는 중국과 미국이 양분하고 있다는 얘기다. ‘차이나 블랙홀’은 어떤가. 세상의 모든 자원은 이제 로마가 아니라 중국으로 통한다.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는 중국과의 거리로 값이 결정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멕시코산 철광석보다 호주산 철광석이 비싸다는 얘기다. 중국까지의 운임이 싸기 때문이다. 업자들에겐 상식 같은 얘기다. 그만큼 중국 파워는 절대적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중국 지도자는 요즘 앞다퉈 ‘우환(위기) 의식’을 강조한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올해 화두가 ‘거안사위(居安思危-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한다)’와 ‘우환의식’이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는 주문이다. 거안사위는 상서(尙書)에 나온다. 그러나 후 주석은 ‘마땅히 은(殷)나라가 망한 것을 기억하라(宜鑑於殷)’를 인용한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문왕(文王)편이다. 상서의 원전 격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한걸음 더 나간다. “‘흥함도 빠르고, 망함도 빠르구나(禹,湯罪己, 其興也悖焉, 桀,紂罪人, 其亡也忽焉)’를 명심하라”고 관리들을 다그친다. ‘좌전(左傳) 장공(莊公) 11년’에 나온다. 물난리를 만난 송(宋)나라의 민공(閔公)이 노(魯) 장공의 사신을 만난 자리에서 “모두 내 잘못이오. 하늘을 공경하지 못했으니 이런 재난을 당하는구려”라고 자책한다. 이 얘기를 들은 노나라 대신 장문중(臧文仲)이 “송나라는 흥하겠구나. 우왕, 탕왕은 스스로를 질책했기에 불처럼 일어났고 걸왕, 주왕은 남 탓만 했기에 재처럼 스러졌지”라고 평했다는 얘기다. 역경(易經) 계사(繫辭)도 “군자는 편안 속의 위태로움을, 생존 안의 멸망을, 다스림 속의 혼란을 잊지 않으니, 이로써 몸과 나라를 지켜내는구나”라고 갈파한다.

우리는 어떤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미래의 위기론’까지 갈 것 없다. 지금 당장이 총체적 위기다. 멀쩡한 배가 창졸간에 두 동강이 나 젊은 생명 수십 명이 시커먼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갔어도, 원인조차 아직 깜깜한 상태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음모설이 나도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그런데도 송 민공의 목소리는커녕 후(胡)·원(溫)의 위기 의식도 들리지 않는다. 이게 진짜 우환 아닐까.

 진세근 탐사 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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