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익의 인물 오디세이]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우리는 영화 버디' . 본지 영화면의 한 시리즈 문패다. 버디(buddy)는 단짝 친구라는 뜻. 죽이 맞아 한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이다.

미국 영화계의 버디로는 감독 마틴 스코세지와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대표적이다. ( '우리 말인 단짝을 놔두고 버디가 뭐냐' 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으나 본지의 문패는 영화용어로 정착한 '버디 무비' -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스팅' 같은 것 - 의 저널적 차용이다. )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버디는? 제작자 이태원과 감독 임권택!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60대 중반을 넘겼다. 장년의 초입인 1984년 처음 만나 오늘까지 늘 의기투합했다. 늘그막에 버디가 어디 쉬운 일인가.

두 사람은 신념합일적 필생의 도반(道伴)이다. 젊은 사람들로 영화계가 재편된 지금, 그들이 조선 후기의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의 첫 느낌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였다.

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후 두 사람의 작업은 우리 영화사의 '신화' 로 기록될 것이다. 목록을 보자. '장군의 아들' (90년), '장군의 아들2' (91년), '장군의 아들3' (92년), '서편제' (93년), '태백산맥' (94년), '축제' (96년), '노는 계집 창' (97년), '춘향뎐' (2000년). '장군의 아들1' 은 그때까지의 최다관객 동원작이고, '서편제' 는 관객동원에서 '장군의 아들1' 의 기록을 깬 작품이며, '춘향뎐' 은 첫 칸영화제 본선 진출작이다.

또 위의 모든 작품은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상이든 부문상이든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 기간에 임감독이 다른 제작자와 만든 영화는 '개벽' 뿐이다. 두 사람의 필생의 목표는 장승업을 그릴 '취화선(醉畵仙)' 으로 내년 칸영화제에서 본상을 거머쥐는 것이다.

혹시 칸이 뭔데 필생 운운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이 뭐며 월드컵이 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태원은 임권택과의 작품 말고도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74년 극장업자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84년 제작자로 처음 나선 그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전 벌써 흥행의 귀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임권택을 만나 비로소 진정한 영화의 뜻을 세웠다고 한다. 인연은 어떻게 맺어지며 그 인연을 소중하게 가꿔가는 힘은 무엇인가.

- 임권택 감독과의 첫 만남은.

"제작자로 나서면서 뜻 있는 작품으로 나를 알리고 싶었다. 그 때 임감독이 '비구니' 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찾아왔다. 첫 대면이었다. '만다라' 의 성공으로 불교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던 그는 '비구니' 로 국제영화제에서 우리 영화의 존재를 알리자고 했다.

뜻이 맞았다. 당시로서는 대여섯 편을 만들 수 있는 제작비를 쓰기로 했다. 그러나 촬영이 진행되는 중에 비구니들의 반발에 부닥쳐 제작을 접고 말았다. 돈은 날렸지만 임감독의 진지한 자세에 감복했고 그것이 나에게는 임감독에게 진 빚이 됐다. "

'비구니' 는 영화 중 몇 장면,가령 극중 주인공 비구니가 6.25 전쟁고아들을 피란시키기 위해 트럭운전기사에게 몸을 허락하는 등의 장면이 비구니들의 반발을 사 법정까지 가는 논란 끝에 당국의 종용으로 제작이 중단됐다.

당시 5공은, 5공 출범 때 불교계를 탄압한 '10.27 법난' 을 의식, 영화 '비구니' 에 대한 항의가 반정부 시위로까지 번질까봐 제작 중단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촬영 중인 영화가 중단된 것은 '비구니' 가 전무후무하다. "

- '아제아제 바라아제' 는 말하자면 그 빚을 갚은 것인가.

"그런 셈이 됐다. 불교 소재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빚이라는 건 국제영화제에서 우리 영화를 부각시키겠다는 임감독의 뜻이 '비구니' 때 좌절된 것을 갚는다는 의미였다.

임감독은 86년에 이미 베니스영화제에서 '씨받이' 로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었다. 그렇다면 '아제아제…' 로는 더 큰 상도 노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자신감이 서로에게 생겼다.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것이지만 제작자의 보람도 감독 못지 않은 것이고 무엇보다 제작자의 전폭적인 지원이 감독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신뢰감이 우리 둘을 묶었다. "

두 사람의 공동작업은 한마디로 말하면 국제영화제를 향한 일종의 장정 같은 느낌을 준다. '춘향뎐' 이 지난해 칸영화제 본선에 올라, 둘이 같이 칸의 뤼미에르 극장 붉은 카펫을 밟으며 흘렸다는 눈물은 어떤 의미에선 촌스러운 것 같지만 84년의 의기투합 후 16년 만의 '작은 성공' 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진정성에 오히려 고개를 숙여도 좋을 것이다(이태원은 스크린쿼터축소저지 비상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성명서를 읽을 때도 울었다).

- '취화선' 의 목표도 결국은 칸을 향한 것인데 성급한 질문이지만 전망은 어떤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안 것인데 칸에서의 수상은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 작업이 많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의 인지도나 가치를 계속해 높여야 한다. 감독의 실력과 칸의 자존심이 만나는 적절한 시기에 결과물로서 수상이 되는 것이다.

임감독은 그동안 칸뿐만 아니라 그외의 영화제에서 꾸준히 초청돼 왔고 평가도 대단히 좋은 편이다. 우리는 수상의 최적기가 내년이 아닐까 생각한다. 90년대 이후 꾸준히 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결과가 내년엔 꽃필 것이라고 본다. "

두 사람의 영화 작업은 천생연분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장군의 아들' 과 '서편제' 의 경우 이를테면 '쉬었다 가자' 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지는 그런 결과가 많았기 때문이다.

'장군의 아들' 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의 피로를 씻어내자고 시작한 것이고, '서편제' 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기획 단계에서 무산되자 그 좌절감을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90년 들어 임감독은 집안의 좌익 문제와 관련된 자신의 '한' 을 섞어 '태백산맥' 을 만들고자 했으나 '비구니' 의 경우처럼 당국의 '간섭' 으로 접어야 했다. '태백산맥' 은 94년 결국 제작됐으나 그 때의 문제가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고 말았다.

- 제작자와 감독으로서 서로 영감 같은 것이 작용하나.

"영감이라기보다 믿고 산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임감독이 하고 싶은 영화는 그의 자존심이 들어 있는 영화일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를 도와준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있기에 대접을 받는 것 아닌가.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나의 존재도 이 사회에서 지금보다 의미가 덜 했을 것이다. "

- 임감독을 독점해 때로는 그의 영화 일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물론 다른 영화사에서 그에게 영화를 같이 하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 말도 안하니 그런건지 아닌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그가 나를 믿는 눈치이니 나로서는 행복한 것이다. "

- '춘향뎐' 은 흥행에서 크게 실패했는데 그 때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했나.

" '춘향뎐' 을 건 복합극장 앞에 나가봤더니 여학생 서너명이 무슨 영화를 볼까 얘기하고 있어 슬그머니 곁에 가서 엿들었더니 '댕기머리 이건 뭐야' 하면서 전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더라.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춘향전' 은 우리 민족의 고전인데 옛날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다시 그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만든 영화를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괄시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영화는 재미있으면 본다고 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으면 재미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뀔 것이다. 지금 만드는 '취화선' 도 우리 그림에 대한 인식이 잘 돼 있어야 영화의 재미가 배가될텐데 사실 걱정이다. "

- 그래도 우리 것에 대한 그런 영화화 작업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꿀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임감독이나 이사장을 평가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84년에 임감독과 우리 소재로 세계를 한번 설득해 보자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일관해서 밀고 나갈 뿐이다. 평가는 다른 사람의 몫이다. "

이태원은 97년 무렵 탈세 문제로 구속된 적이 있다. 탈세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지만 당시 구속은 영화계 내의 알력이 일부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 때 많은 영화배우들이 탄원서를 내 화제가 됐다. 임권택은 그가 구속되자 탄원서에 "사막에 홀로 버려진 것과 같다" 라고 썼다. 이태원은 지금도 힘들 때면 임 감독의 그 탄원서를 읽는다고 한다.

임권택이 장승업을 영화화하자고 영화사로 찾아와 운을 떼자 두 사람은 바로 또 의기투합해 임김독의 설명을 듣다 말고 그들이 즐겨 찾는 삼각지의 곱창구이집으로 자리를 옮겨 통음했다고 한다.

이헌익 <스포츠문화에디터>

사진=김진석 기자

<이태원 사장 약력>

▶61년 건창기업 상무

▶태흥영화사 설립

▶전국극장연합회 회장

▶한국영화문화상 수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