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광장] 유고의 10년 우리의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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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0년 전인 1991년 6월 25일 유고연방 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선언을 했다.

다음날인 26일 슬로베니아 전역에 사이렌이 울렸다. 방송들은 긴급 뉴스를 내보냈다. "연방군이 출동했다. " 유고 내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현지로 간 기자는 택시기사를 설득, 라이트를 끈 채 최전선까지 접근해 야간전투를 취재했고 류블랴나 상공에서 연방군 전투기가 기관총을 마구 쏴대는 모습도 목격했다.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한 유고 내전은 이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로 전장(戰場)을 옮겨 가다 이젠 대충 마무리됐다.

마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유고연방(세르비아+몬테네그로)대통령을 국제전범재판소에 인도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돼 유고 사태는 10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려가고 있다.

그간 민족주의를 내세운 정치인들의 욕심에 무고한 양민들이 얼마나 희생됐던가. 부코바르.두브로브니크.비하치.바냐 루카.모스타르, 그리고 사라예보. 처절한 살육의 현장들이 눈에 선하다.

당시 현장에서 내린 결론은 '이들의 독립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는 것이었다.

'…유고는 1개 연방국가에 2개 문자, 3개의 종교, 4개 언어, 5개 민족, 6개 공화국, 7개의 국경을 가진 복잡한 나라다. 이 때문에 두 공화국의 독립은 어찌보면 합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고에 비하면 우리 사정은 얼마나 유리한가. 같은 민족에 같은 문자, 같은 언어를 갖고 있는 우리가 단지 어느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 91년 당시 기자가 현지에서 썼던 취재일기의 한 대목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옛 유고연방에서 분리된 나라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젠 반목과 질시의 원천이었던 민족주의마저 역사 속에 묻었다.

우리는 어떤가. 그간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 까지 왔지만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10년 전 유고사태를 보면서 느꼈던 지역감정은 더 깊어진 듯하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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