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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투성이 대입제도 지금이라도 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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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이 싫어 촛불집회를 하고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소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내신 강화, 수능 9등급화, 고교 등급제 금지, 대학별 본고사 금지 등이 다 문제다. 그래서 지금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비가 경감됐는가? 최근 사교육비 지출이 급증했다는 보도도 있었거니와,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전 과목 과외를 받아야 한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부모들은 또 그들대로 신음하고 있다. 내신 비중을 강제로 높여 교사들의 장악력을 키우면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발상도 황당하다. 단언컨대 학력이 천양지차인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는 비인간적인 교육 현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내신제도 그렇다.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 간 학력차를 애써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평등사회 건설인가. 그 결과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급우가 적이 되었고 교실은 살벌한 전쟁터가 되었다.

교육부와 일부 학부모.교원단체는 경쟁이 마치 죄악이나 되는 것처럼 매도하면서 대학마저 평준화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쟁과 그 결과로서의 서열화는 그것대로 존중하고 경쟁에서 낙오됐거나 불리한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경쟁 그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은 좋게 말해 순진하고 정확하게 말해 멍청하다.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지향하라. 경쟁과 서열화를 사갈시하는 일부 학부모.교원단체에 묻는다. 서열화가 왜 나쁜가. 경쟁과 서열화는 자연계의 법칙이며 발전의 원동력이다. 경쟁과 그 당연한 결과로서의 서열화를 억지로 막겠다는 사고방식이 극단화된 게 공산주의다.

교육부가 제시한 방안대로 하면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내신평가를 제외하고는 학생의 실력 차이를 파악할 길이 없게 된다. 무엇을 근거로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 그 문제는 대학이 연구해 해결하라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대안도 없이 본고사를 금지하고는 "대학이 알아서 하라! 말 안 들으면 재미없다"고 하니 교육부 폐지론이 공감을 얻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에 학생 선발 권한을 돌려줘야 한다. 동시에 대학.학과별 취업률 공개와 선별 지원 등을 통해 각 대학이 스스로 특성화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최근 실업계 고교가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경쟁을 막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치열한 한 줄 서기를 강요할 게 아니라 어떻게 여러 줄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이 각자 적성과 소질에 따라 원하는 곳에 줄을 서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라.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오류를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라. "학생들이 오해하고 있다"든가 "홍보가 부족하다"며 미봉하려다가는 정말 큰일난다. 내 아이도 89년생, 고1이다. 제발 부탁이다.

한민호 문화관광부 기초예술진흥과 서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