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격전지 찾아 유해발굴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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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0사단 장병과 대구예술대 학생들이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유학산에서 6·25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해 관에 넣은 뒤 경례를 하고 있다. [대구예술대 제공]

“쪼그려 앉은 채 숨진 유해가 눈앞에 나타났다. 팔 다리는 흩어져 있고 두개골은 떨어져 있었다. 너무 처참했다.”

지난달 24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유학산 능선.

대구예술대 총학생회장 김희준(25·실용음악과4)씨는 50사단 장병과 한 조가 돼 유해발굴 체험에 나섰다. 유학산은 학교에서 늘 바라보던 평화로운 산이다. 그러나 이날 직접 가파른 산을 올라 보니 인적이 끊겨 길조차 나 있지 않았다.

유학산은 6·25 때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 아군과 적군이 뺏고 빼앗기는 처절한 전투를 벌인 다부동 격전지다. 유해발굴단은 넓고 험한 산에서 용케도 유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다. 주로 산등성이의 큰 나무와 작은 나무 뒤쪽이었다. 그곳엔 참호가 있었고 감식단은 발굴 대상임을 표시했다. 그러면 삽과 호미 등이 동원됐다.

김씨는 유해를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군에서 병역의무를 마친 김씨는 “그동안 나라사랑이 솔직히 부족했다”며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군 장병과 함께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6·25 발발 60주년, 유해발굴 10년째를 맞아 대구예술대 총학생회와 교직원 25명이 다부리에서 육군 50사단 장병들의 유해발굴에 동참한 것이다. 학군단이나 부사관학과 학생들이 아닌 총학생회가 주관이 돼 일반 대학생이 유해발굴 체험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생 22명은 총학생회 공지를 본 뒤 스스로 모였다. 이번 체험은 육군 50사단이 대학생에게 6·25 전쟁의 참뜻과 구국정신을 새기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했다.

참가 대학생은 50사단 칠곡대대 임시봉안소와 감식소를 견학한 뒤 다부동 전적기념관으로 이동해 낙동강전투 영상 시청, 기념비 참배, 전시물 관람, 유해발굴 요령 소개 교육 등을 받았다.

이후 학생들은 장병들과 함께 유해발굴 장비를 지니고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내려다보는 유학산 759고지에 올라 주먹밥을 먹으며 2시간 동안 발굴에 동참했다. 발굴을 마친 뒤 군 장병과 대학생들은 유해를 놓고 산 정상에서 노제를 지냈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플룻으로 진혼곡을 연주했다.

할아버지가 6·25 때 육군 항공대로 참전했다는 이미은(20·실용음악과1)씨는 “말로만 듣던 6·25의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 숙연해졌다”며 “할아버지께 유해발굴 체험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대구예술대 김정길 총장은 “다부리는 바로 우리 대학이 자리잡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라며 “체험이 구국정신과 안보 현실을 가르치는 산 교육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50사단장 이진모 소장은 “총학생회 간부들이 스스로 유해발굴 현장을 찾은 것은 이 사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50사단은 앞으로도 일반 대학생의 요청이 있을 경우 유해발굴 체험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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