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로 일본 두들기는 김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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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에 진출한 한국 여자배구의 에이스 김연경(22·사진)은 일본에서 ‘JT 마블러스의 수호신’으로 불린다.

그만큼 일본에서의 활약이 독보적이다. 지난 시즌 일본 프로배구리그에서 10개 팀 중 9위(10승17패)에 머물렀던 JT 마블러스는 김연경이 합류한 뒤 승승장구,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압도적 1위(26승2패)에 올랐다. 김연경은 전체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정규리그 득점왕(696점)에 올랐다.

지난 2~4일 풀리그로 진행된 일본리그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김연경을 앞세운 JT 마블러스는 3전 전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사상 첫 우승을 노리게 됐다. 단판 승부인 도레이 애로우스와의 챔피언결정전은 10일 도쿄에서 열린다. 4일 경기 뒤 김연경과 전화인터뷰를 했다. 사흘 연속 경기를 치른 탓에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현미경 분석’이 일본 배구의 강점=“일본에 와서 기량이 많이 늘었어요. 경기를 읽을 줄 알게 됐다고 해야 하나.”

스스로 꼽은 김연경의 성공비결은 치밀한 준비였다. 소속팀은 상대의 패턴 플레이를 파악하고, 상대 선수의 습관, 주된 공격 코스 등 ‘수(手)’를 현미경처럼 분석한다. 그리고 김연경은 팀이 분석해 준 자료를 숙지해 경기에 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단점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가령 “한국에서는 강하게 때릴 줄만 알았지만 일본에 온 뒤 페인트 비중을 늘리며 강약 조절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처음 겪는 ‘용병 생활’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이국 땅, 낯선 언어로 인한 외로움과 팀 공격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가장 힘겨웠을 때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였다. 신종 플루에 걸려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에는 일절 알리지 않았다. “괜히 걱정하실까봐요. 창밖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서 조금 서글프기도 했지만 팀 관계자 등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줘 괜찮았어요.”

◆구단·협회·연맹이 하나 돼야 일본 꺾는다=김연경은 인터넷으로 한국프로배구를 꼬박꼬박 챙겨 본다고 했다. 그는 한국 여자배구의 침체 원인으로 국제대회에서의 성적 부진을 꼽았다. 한국여자대표팀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본선에서 일본을 꺾은 뒤 상대 전적 1승17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연습 기간이 늘 부족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반복해서 지는 것은 정말 슬프다. 선수는 물론 구단·협회·프로연맹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당장은 일본을 꺾을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이 훈련하는 기간이 짧고, 일본처럼 세밀하게 상대를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했다. “우리 선수들의 신체 조건이 좋고, 공격 중심의 배구로 스타일이 변하고 있다. 호흡을 맞춘다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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