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대전 돌풍 이유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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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돌풍인가, 우연인가.

약체로 꼽혔던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의 초반 돌풍이 무섭다. 정규리그 27경기 중 2연승을 거뒀을 뿐이지만 상대가 지난해 정규리그와 FA컵에서 각각 정상에 올랐던 안양 LG와 전북 현대로 두팀 모두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다. 그런데 각각 2 - 0, 4 - 1로 깨끗하게 이겼다.

대전이 선전하는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녹록지 않은 선수진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대표 상비군 김은중과 면돗날처럼 날카로운 패스 배급이 장기인 플레이 메이커 이관우, 파괴력있는 왼쪽 날개 공오균 등이 버틴 기존 공격진은 어느 팀에도 꿀리지 않는다.

짭짤한 신인 수혈은 상승세에 불을 붙였다. 올해 3순위로 데려온 탁준석이 정규리그 들어 벌써 1골.3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마다 '사고' 를 치고 있다. 청구 마린스에서 활약하던 중고 신인 정영훈과 올해 1순위로 입단한 김영근이 두터운 미드필드를 구축하며 수비가 안정세다.

구단측은 지난해에 비해 세배 가량 대폭 인상한 출전승리 수당도 선수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다. 경기에 출전해 승리할 경우 지난해엔 구단 내 최고액이 90만원이었지만 올해는 이관우.김은중 등이 2백50만원을 받는 등 선수들은 평균 2백만원의 부수입을 챙기게 된다.

지난해 말 감독에 취임한 '이태호 효과' 도 무시할 수 없다. 이감독은 경기에 승리할 경우 숙소로 돌아가는 선수단 버스 안에서 캔맥주를 풀 정도로 선수 관리에 유연하다. 훈련은 강하게 시키지만 특유의 유머로 자칫 경직되기 쉬운 팀 분위기도 수시로 풀어준다.

그러나 군기를 잡을 땐 확실하게 잡는다. 이감독은 정규리그 개막전 전날 자체 연습경기에서 공오균의 불성실한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자 공개적으로 나무란 후 전력 손실을 무릅쓰고 개막전에서 그를 뺐다.

독이 오른 때문인지 공오균은 20일 안양전에서 첫 골을 뽑아냈고 분풀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여러 차례 쏴대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감독의 조련술이 그럴 듯하게 들어맞은 셈이다.

아직 2승이지만 이감독과 대전 선수들의 눈빛은 뭔가 다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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