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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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6. "중노릇 쉬운것 아이다"

"내일이 동지 보름이라, 이왕 하는 김에 좋은 날 삭발하지요. "

우여곡절 끝에 2만1천배를 마치자 원주스님이 삭발 날짜를 잡았다. 백련암에서는 성철스님의 뜻에 따라 삭발과 관련된 모든 의식을 없앴다. 대야에 물을 떠놓고 원주스님이 직접 가위 들고 긴 머리카락을 대강 자른 다음 바리캉으로 밀었다. 마지막엔 면도로 한 올의 머리카락까지 깨끗이 걷어냈다. 삭발이 끝난 뒤 원주스님이 머리카락을 싼 종이를 내밀었다.

"이 긴 머리카락은 속세와 절연하는 상징이니 행자가 태우든지 말든지 하이소. "

혹자는 눈물이 솟는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저 담담했다.

"제 몸에서 떠났으면 그만이지요. 제가 또 어디 버리겠습니까. 원주스님이 다른 행자들에게 하는 대로 하시지요. "

머리를 감느라 맨 머리를 만지니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딱딱하고 까슬까슬한 촉감이 느껴졌다. "나도 이제 스님이 되기는 되는 모양이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삭발로 얻은 '행자(行者)' 라는 이름은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예비승' 을 가리키는 말이다.

큰절(해인사 본찰)로 내려가 법문을 하고 올라오던 성철스님이 내 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방으로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삼배(三拜)를 하고 꿇어앉았다. 큰스님의 표정이 출가를 권하던 당시의 자상함으로 바뀌었다.

"니도 이제 중 됐네. 그런데, 머리만 깎았다고 중 된 것 아니제. 거기에 맞게 살아야지. 중은 평생 정진하다가 논두렁 베고 죽을 각오를 해야된다 아이가. 중노릇이 쉬운 거는 아이다. 알겄제. "

방금 삭발하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법문을 해주니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대답만 "예" 하고 있었지만, 시종 "내가 진짜 중이 되기는 된 것인가" 하는 의아함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절한다꼬 수고 많았다. 며칠 쉬거라. "

물러 나와 큰스님의 말씀을 원주스님께 전했다. 원주스님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뒷방을 하나 배정받아 며칠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밥 먹고 누우면 바로 잠이 들었다. 2만1천배의 피로와 긴장이 한올씩 몸을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스님들 생활이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이구나" 하며 온몸이 풀어져 있을 때 원주스님이 작은 우물가로 불렀다.

"지금 절에 공양주(밥하는 사람)가 없으니 이제 행자가 공양주 노릇을 해야겠다. "

행자로 받은 첫 소임(직무)은 부엌일이었다. 원주스님이 조리와 쌀 한 되를 내주면서 "저녁 공양을 위해 쌀을 씻어 보라" 고 했다. 나는 일순 당황했다. 이런 일을 하려고 출가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원주스님. 지금까지 내 손으로 밥 해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밥하려고 절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밥 할 사람이 없으면 식모를 한 사람 두면 되지 않습니까. "

이번에는 원주스님이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다.

"큰스님께서 불교를 좀 아는 놈이 온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에 잘 봐 주려고 했더니만, 절 살림에 대해서는 영 깡통이구먼. 큰스님께서 일체 부엌에 여자를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식모를 두겠나. 아주 똑똑한 행자 다 보겠네. "

원주스님은 '이상한 놈' 이라며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한 행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당시는 정말 막막했다.

지금이야 전기 밥솥에 쌀과 물만 넣으면 밥이 되지만 당시에는 조리로 쌀을 일어 돌을 가려내고, 무쇠솥에 불길을 골라가며 밥을 지어야 했다. 큰 바가지에 쌀을 붓고 물로 몇 번 헹궜다. 이어 조리질을 한다고 했는데 쌀이 어디로 도망가는지 빈 조리만 헛바퀴를 돌았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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