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5.4㎝ 그물눈과 국가의 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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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만약 북한의 잠수정이나 반(半)잠수정이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떠받치는 정황이 많다. 내부폭발·암초·피로파괴는 가능성이 떨어지는 정황이 여러 가지인데 어뢰 공격만큼은 수수께끼 퍼즐(puzzle)이 맞춰지고 있다. 배의 침몰 양태, 북한 해군의 능력, 그리고 북한 정권의 의도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1999년 6월 호주 해군은 어뢰 발사를 시험했다. 퇴역을 앞둔 2700t급 구축함을 향해 잠수함이 어뢰를 쐈다. 어뢰는 배 중앙 밑바닥 수중에서 터졌다. 거대한 구축함은 중앙 부분이 위로 들어올려지면서 바로 쪼개졌다. 이어 버블 제트(bubble jet·물기둥을 만드는 가스 분출) 공격으로 배가 완전히 두 동강 났다. 함미(艦尾)는 곧바로, 함수(艦首)는 수시간 후에 침몰했다. 여러 양태가 천안함과 너무나 비슷하다. 천안함 생존자들은 몸이 붕 떴다고 증언한다. 천안함도 거의 배 중앙이 쪼개졌고 함수·함미가 호주 군함처럼 가라앉았다. 호주 잠수함은 TNT 300㎏ 어뢰로 2700t 함정을 부쉈다. 천안함은 1200t이니 TNT 130㎏ 이상이면 된다. 백령도에서 관측된 지진파의 충격은 TNT 180㎏이었다.

사고 지점은 NLL(북방한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수심이 얕으며 조류가 거세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잠수정 부대에 이런 것쯤은 장난 같은 얘기다. 98년 12월 북한 반잠수정은 여수 앞바다에 등장해 통영 앞바다를 휘젓다가 거제도 바다에서 한국 초계함의 포탄에 맞았다. 96년 6월 북한 잠수정은 강릉 앞바다까지 들어왔다가 꽁치그물에 걸렸다. 이처럼 북한 잠수정의 활동 영역은 한반도 전체다. 강릉에 침투한 북한 잠수정 요원들은 증거를 없애려 다수 동료를 쏴 죽이고 남은 이들이 도주하는 작전을 폈다. 북한 잠수정 부대원은 테러집단 같은 극렬함과 야만성으로 무장돼 있다. 조류나 풍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에서 경비정이 반파되는 패전(敗戰)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수차례 “도발에는 응징이 따르며 남한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지금 같은 미묘한 시기에 도발할 리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6자회담 재개와 김정일 방중을 앞두고 대남 도발은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모한 북한은 어뢰 공격 정도는 비밀리에 해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수 있다. 87년 KAL기 폭파도, 96년 강릉 잠수정 침투도 북한은 들키지 않으리라 믿었다. 이번에도 어뢰 파편은 거세고 혼탁한 바닷속으로 사라질 테니 잠수정만 잡히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을 수 있다. 그러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면 이런 일을 당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물론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상황을 종합해볼 때 어뢰가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 1위’로 떠오르고 있다. 내부폭발·암초·피로파괴로는 TNT 180㎏ 정도 되는 충격파가 생기지 않고 승조원의 몸이 붕 뜨지도 않는다는 게 전문가의 거의 공통된 견해다.

모든 미스터리(mystery) 사고가 그러하듯 우선 ‘가능성 1위 원인’을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46년 영국은 알바니아 영해에서 자국 군함이 침몰하자 바다를 뒤져 독일제 기뢰의 파편 2개를 찾아냈다. 만약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은 것이라면 어뢰 파편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선체의 피격 정황이 아무리 뚜렷해도 파편만 한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바다가 평원이라면 파편은 풀 한 포기다. 기뢰탐지함이나 잠수대원이 갯벌 속에서 그런 파편을 찾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어민들의 쌍끌이 저인망 어선이 바다 밑을 훑어야 한다. 그물 수백 개가 찢어지더라도 훑고 또 훑어야 한다. 그물눈의 크기는 54㎜라고 한다. 그 5.4㎝에 대한민국의 진로가 걸려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바로잡습니다 ‘1946년 영국 군함이 알바니아 영해에서 침몰했다’는 내용은 맞지 않아 바로잡습니다. 영국 군함은 알바니아가 설치한 기뢰에 피격돼 사상자를 냈지만 침몰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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