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스테이지] 무대의상 디자이너 김현숙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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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무대의상은 일종의 '매직' (마술)이어서 무대 밖으로 나오면 생명력을 잃는다. 매직은 무대의 빛과 색감, 거리감에 의해 조성되는 신비한 그 무엇이다. "

무대의상 디자이너 김현숙(47.단국대 예술조형학부)교수의 '무대의상론' 제1장 제1조다.

김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무대의상 디자인계의 최고 전문가. 대표작인 뮤지컬 '명성황후' 하나만 들어도 그걸 본 사람이라면 "아, 그 사람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사실 단번에 관객의 혼을 빼는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의상(총 6백여 벌에 이른다)의 마술이야말로 '명성황후' 성공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 결과 '명성황후' 는 대중들에게 예술로서 무대의상을 각인시킨 이정표로 남았다. 이전까지 무대의상 디자이너는 연출가의 횡포를 감수해야 하는 '조연' 에 불과했다.

"무대의상에 대한 제작자나 연출가들의 인식이 많이 높아졌지만 지금도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공연의 컨셉트에 맞는 의상의 질감과 색감.채도 등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무조건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연출가들이 많다. '연출가 권력' 에 대한 지나친 우대가 빚은 결과다. "

김교수는 우리 무대의상계의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인을 겸해온 이병복(극단 자유 대표)씨 등 선배들이 있으나, 전문성 측면에서 김교수를 선구자로 치는 게 마땅하다.

학력이 모든 것을 말하진 않지만, 국내 처음으로 외국(일리노이대)에서 무대의상 디자인 MFA(실기석사)를 받았다.

"패션의상이든, 무대의상이든, 전시의상이든 제작 과정은 같지만 그 결과는 천양지차다. 나는 이를 '실물성(實物性)의 차이' 라고 부른다. 즉 무대의상은 무대에 있음으로 해서 그 성질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무리 잘 만든 의상도 무대에서 내려와 내 곁에 있으면 보기가 싫다. "

김교수는 무대를 떠나면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아니라 어떤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는 '의상 디자이너' 로 불리고 싶어한다.

"어떤 의상이든 의상 자체가 곧 내 인생이다.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현장을 벗어나 학교에 적을 두게 된 것도 일부러 그런 구분을 두고 싶지 않아서다. "

김교수는 올봄 교수가 됐다. 나이를 보면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전문가 양성에 대한 열망이 그 길로 몰았다. 실력있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만이 무대의상 디자인을 독자적 예술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 속셈이 있었다. 그는 "똑 소리나는 전문가 양성이 교육의 첫째 목표" 라고 고백했다.

방학이 되면 김교수는 또 다시 무대의상 디자인에 몰두한다. 8월 대극장(LG아트센터) 버전으로 바뀌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을 맡았기 때문. 이와 별도로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복식학회 의상전에도 참가한다. 김교수는 85년부터 지금까지 20여 작품의 의상을 맡았으며, 97.99년 각각 백상예술대상과 동아연극상을 타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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