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아프리카축구 중심 급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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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남아공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그 무엇이다.

악명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1974년 유엔에서 축출당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남아공은 축구를 통해 국민 대통합을 이뤄냈다. 96년 홈에서 벌어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직후 당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백인 선수들과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은 흑백 화합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후 남아공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첫 출전하고 98네이션스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90년대 후반 아프리카 축구를 선도했다. 남아공은 2002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도 사실상 손에 쥔 상태다.

아프리카 최종예선 E조에 속한 남아공은 4전전승(승점 12)으로 2위 짐바브웨(2승2패.승점 6)에 크게 앞서 있다. 남은 두 경기 중 한번만 비겨도 본선행 티켓을 따낸다. 예선에 나선 1백95개국 가운데 가장 먼저 본선 진출이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트로트 몰로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96네이션스컵과 98프랑스월드컵 출전 멤버에 신예들이 가세해 신구 조화를 이뤘다. 젊은 선수들은 대부분 유럽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다.

'바하나 바하나' (남아공팀의 애칭. '소년들' 이란 뜻)의 리더는 76년 흑인 봉기 거점이었던 소웨토 출신의 수비수 루카스 라데베. 잉글랜드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주장을 역임했으며 FIFA 페어플레이상도 수상한 국민적 영웅이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퀸턴 포춘(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돋보이는 선수다. 생고무 같은 탄력을 살려 한번 점프한 뒤에 또다시 떠오르는 듯한 헤딩이 위협적이다.

최전방에는 베네딕트 매카시(RC 셀타)가 눈에 띈다. 20세 때 네덜란드 최강 아약스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1m84㎝ · 78㎏의 당당한 체격에 수비의 예측 범위를 뛰어넘는 몸놀림으로 골을 사냥한다.

남아공은 지난해 2006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 투표에서 독일에 졌다. 뇌물수수 의혹 등 파장이 커지자 국제축구연맹은 2010년 월드컵은 아프리카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남아공이 내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2010년 개최권은 '떼어논 당상' 이 될 것이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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