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황령산] 상. 신음하는 녹지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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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부산의 ‘허파’인 황령산이 개발이냐,보존이냐의 틈바구니에 끼여 신음하고 있다.

온천 개발 용지로 2만 평의 임야가 깎인 채 공사가 중단돼 9년간 방치되면서 흉물로 변했다.그런데도 부산시·남구청과 시민단체는 아직도 ‘개발’과 ‘보존’공방을 되풀이하며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시민단체 등 일부에서 환경친화적으로 가꾸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는 등 활용방안을 모색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황령산 온천지구 개발 현장의 실태와 행정당국과 환경단체간의 끊임없는 줄다리기,활용방안 등을 3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부산 도시고속도로 수영터널 위 황령산.나무가 우거진 중턱에 대규모의 상처가 나 숨을 헐떡이는 것 같다.

가파른 비탈이 깎여져 가까이서 보면 대규모의 산사태가 난 뒤 복구되지 않은 수해지역 같다.또 멀리서 보면 폭격현장 같다.

도시고속도로 대연터널을 지나 수영터널로 달리는 운전자들은 수영터널 입구에 나타나는 이 곳을 보면 “저 곳을 왜 깎았지”하며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황령산 운동시설 지구.

1993년 온천지구 개발을 하기 위해 산을 깎았다가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 부닥쳐 공사가 중단된 지 9년째.

절개지 2만여 평에는 잡초들이 무성하다.바닥 곳곳이 가라앉아 지반 침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토석이 유실되고 돌과 바위가 금이 가 떨어지고 있다.

1997년 산 아랫자락에 산사태가 발생한 뒤부터 장마철이 되면 풍수해 담당 공무원들은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걱정을 한다.

토목공사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가 건물은 인근 불량배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다.공사장 입구에는 ‘금련산 체육공원’현장을 알리는 간판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주변에는 공사용 자재가 풀더미 속에 어지럽게 늘려있다.출입문은 굳게 닫혀있다.

부산 도심의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녹지공간인 황령산의 체육시설 지구가 장기간 흉물로 방치되는데 대해 걱정하는 시민들이 늘고있다.

시민의 여론을 수렴해 개발이든,보존이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공사가 시작된 만큼 최소 규모의 환경 친화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차선이라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황령산 개발은 1972년 건설교통부가 황령산 중턱에서 꼭대기까지 1백76만 평을 ‘유원지 지구’로 고시하면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83년 황령산 종합개발계획을 수립,골프연습장 2개·운동시설 3개·야영장·동 식물원·유희시설·전망대·문화시설·주차장 등 모두 15개의 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84년 도시계획 결정 고시를 통해 현실화 했다.계획에 따라 금련산 청소년수련장·대연3동 골프연습장 등 2곳은 조성됐다.그러나 나머지 시설은 환경훼손 여론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황령산 개발은 운동시설,온천개발,스키돔 건설 등 개발계획이 몇 년 주기로 바뀌면서 뜨거운 논란을 불렀다.

황령산은 최근 들어 또 다시 몸살을 앓을 조짐이다.

부산시는 지난 2월 말로 만료된 황령산유원지 운동시설 지구에 대한 도시계획시설사업 기간을 내년 2월 말까지 1년간 연장,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부산시는 “운동시설지구로 개발키로 한 황령산유원지 도시계획사업이 온천개발 문제로 10년 가까이 표류해 시민·환경단체·학계·언론계 등의 여론수렴을 통해 가장 적합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사업기한을 연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부산시가 사업기간을 연장한 것은 황령산을 개발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인호(朴仁鎬)부산경제가꾸기 시민연대 공동의장은 “황령산은 도심에 위치해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여건 때문에 개발유혹을 많이 받아왔다”며 “이제 개발할 것인 지,원상복구할 것인 지,아니면 환경친화적으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해 부산시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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