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인디] 8. 인기 인디 계열 1세대 '볼빨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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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금까지 네 곡을 죽 들어보셨는데, 이번 앨범도 애는 망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실 줄로 압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교통비라도 한번 벌어보겠다고 이렇게 나와서 앨범 만들고 살아보겠다고 그러는데, 여러분 한 번만 꼬옥 좀 도와주십시오. 지금부터 들려드릴 곡은 한남동의 명가수 에레나정을 모시고, 듀엣곡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

볼빨간이 지난 주 발표한 2집 '야매' . 야매는 허가나 자격증이 없는 비전문가에 의한 행위나 그 결과물을 뜻하는 은어다. 전형적인 뽕짝.지르박 곡조의 노래 네 곡이 끝나면 '모시는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멘트가 나온다. 영락없이 유랑단의 사회자풍, 그러니까 만담 스타일이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퉁퉁한 몸매로 이런 멘트를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볼빨간의 모습을 연상하면 더욱 그렇다. 앨범 전체에 이런 유머가 가득하다.

볼빨간. 스물아홉살. 서울 토박이다. 1994년부터 홍대 부근의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96년 인디 레이블 카바레싸운드를 설립한 한국 인디 계열 1세대다. 98년 첫 앨범인 '볼빨간 지르박 리믹스쇼' 를 발매해 주목받았다. 이후 여러 인디 밴드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창작 활동을 계속해왔다.

99년 화제의 영화 '거짓말' 에 그의 노래 '나는 육체의 판타지' 가 사용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영화 '하면 된다' 음악에 참여했고, 현재 인터넷 방송국 아이엠스테이션에서 '볼빨간의 싸롱뮤직' 의 진행을 맡고 있다. 최근엔 단편 '소풍' 으로 칸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송일곤 감독의 신작 '꽃섬' (개봉 예정)에 출연하기도 했다.

"강원도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해 갔는데 영화를 찍더라고요. 그게 참…. "

무표정하게 영화에 출연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얼굴이 넉살스럽다. 볼빨간의 음악은 이런 식이다.

록을 중심으로 하는 인디 계열에서는 독특하게 테크노를 뒤섞은 뽕짝과 지르박을 주로 하는 이유에 대해 "어렸을 때 '웃으면 복이 와요' 를 보던 생각으로 음악을 한다" 고 말한다. 어쩌면 음악을 통해 음악적 엄숙주의를 조롱하는 것이다.

'생맥주 나르던 시절 맥주 찌든 내 튀김 기름 내 그게 전부라 생각했어요' ( '인생 역전타' )같은, 삶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가사가 기존 트로트 가요와 볼빨간의 음악을 크게 차별화하는데 가사는 만화가이기도 한 돌코가 1집부터 대부분 써왔다.

인디 레이블 카바레싸운드를 떠난 볼빨간은 2집을 내면서 이른바 오버그라운드 기획사인 아이엠스테이션으로 옮겼다. 이 기획사에는 인디 출신 밴드 넬도 소속돼 있다. 이런 흐름은 인디 계열 뮤지션들이 주류로 진출하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볼빨간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글=최재희.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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