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하리수를 보며 걱정되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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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최근 한 달 사이 KBS2 채널에만 성전환자를 다룬 프로그램이 세 개나 있었다.

목사가 출연하여 신의 섭리를 논했던 '시사난타 세상 보기' 와 개그맨 이창명이 직접 성전환자로 분장하여 그들이 일하는 무대까지 현장 체험한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 그리고 지난주에 5부작으로 방송된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 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여자 하리수' 다.

하리수가 성전환자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이유 중 하나로 '그녀는 예뻤다' 는 사실을 빠뜨릴 수 없다. (못생긴 건 용서가 안 된다?)만약 그녀의 외모가 심히 부자연스러웠다면 사회의 시선도 덜 너그러웠을 것이다. '인간극장' 을 통해 본 하리수는 예뻤고 또한 그녀는 바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스타' 였다.

'스타 다큐' 라는 프로그램의 책임PD이던 시절 내 역할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는 스타' 와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까지 들춰보려는 제작진' 사이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이었다. 스타와 매니저는 눈물까지도 상품화하려 한다. 하리수에게서도 인간을 보고 싶었는데 왠지 극장에 온 느낌이 들어 솔직히 아쉬웠다.

프로그램에 삽입된 광고들 틈에 '새빨간 거짓말' 이라는 카피와 함께 이미 '그 여자' 가 등장했다. 요즘 그녀가 사는 모습이 죽 비쳤는데 그게 완전히 스타 연예인의 삶이었다. 영화와 CF 및 화보촬영에서 음반 취입까지 한 마디로 인간의 향기보다는 상품의 냄새가 독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단서 아래 모자이크 처리되어 등장한 그의 부모마저 '왜 저들을 저런 식으로 괴롭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안쓰러웠다.

하리수의 군 면제 사유란에 적은 판정관의 소견은 '정신이상자' 다.

명랑 쾌활하고 영리하고 예의바른 젊은이가 단지 스스로를 여성이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이코가 된 셈이다. 혹을 잘라낸 곱사등이와 자신의 삶에 거추장스러웠던 성기를 잘라낸 하리수의 차이는 뭘까.

뮤직비디오 촬영 시 그녀를 차가운 물탱크 속에 수없이 밀어 넣는 장면이 있었다. 그를 대하는 카메라의 태도 역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보였다.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그 산 속에 영자가 살고 있다' 고 소개된 무공해 처녀는 그 후 CF에까지 등장하더니 몹쓸 일을 겪고 이제는 진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원한다고 그녀를 극장으로만 내몰 게 아니라 인간으로 돌려놓는 일도 필요할 듯하다. 하리수에게도 말한다. 재능과 열정을 아껴서 써라. 그리고 TV를 너무 믿지 마라.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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