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만 ‘묻지마 범죄’에 떨고 있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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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8년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중국산 농약만두 사건이 처우에 불만을 품은 농촌 출신 임시직 근로자의 범행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사회에 ‘불만 범죄’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본지 3월 29일자 17면>

급속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 감춰진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범죄’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공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다 농촌 출신 구직자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빈부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어 유사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농약만두 사건의 용의자 뤼웨팅(呂月庭·36)은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 톈양(天洋)식품에서 임시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급여 등 처우에 불만을 가졌고, 이에 대한 원한을 풀려고 2007년 10월 만두에 농약을 넣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1000명)의 대부분은 뤼처럼 농촌 출신 임시직 근로자다. 이들의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인 1000위안(16만5000원)밖에 되지 않는다. 유급휴가도 없으며 정규직이 되는 길도 막혀 있어 대부분 2~3년 후 그만둬야 한다. 실업자가 돼 또다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전 직원은 “뤼의 범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심정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도 “뤼가 절망적인 심정에서 사회에 보복을 노린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농약만두 사건과 비슷한 범죄는 최근에도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달 23일 푸젠(福建)성 난핑(南平)시에서는 초등학생 9명이 등굣길에 40대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전직 의사인 범인은 지난해 의료사고로 실직한 이후 재취업이 되지 않아 고민해오다 이 같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월 산시(陝西)성에서는 급여 체불에 불만을 품은 50대 근로자가 거리에서 폭약을 터뜨려 행인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농촌 출신 근로자나 극빈층 등 사회적 약자의 ‘풀 곳 없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쑨리핑(孫立平) 칭화(淸華)대 교수는 “중국은 강자와 약자가 확실히 나뉘어 강자가 더욱 강해지는, 균형이 무너진 사회가 됐다”며 “이 때문에 약자 측이 과격한 반사회적 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한 반체제 인사는 “중국은 불공평감이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불안정한 사회여서 작은 동기와 계기로도 반사회적 범죄나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는 사회적 약자들의 불공평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소득 격차가 1988년 7.3배에서 2007년에는 23배로 커졌다.

중국 지도부는 양극화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소외된 농촌·빈민층을 다독이지 않고는 지속 가능한 성장 목표가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정부의 국정 이념도 조화사회 건설이다. 홍콩 총영사관 선임연구원 전가림 박사는 “빈부격차가 원인인 반사회적 범죄는 공산당 지도체제를 안에서 위협하는 가장 큰 도전”이라고 분석했다.

정현목 기자,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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