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적자 파업' 조종사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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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

비행기를 타면 승객들은 기장의 이런 기내 인사말에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던다.

고도의 기술과 전문성으로 수백명의 승객 목숨을 책임지는 사람들. 그런 점에서 항공기 조종사는 존경과 선망을 받는 직종 중 하나다. '억원대의 연봉' 에 대해서도 대체로 '받을 만한 사람들' 로 인정된다. 그러나 요 며칠 그런 이미지는 작지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이 진행된 이틀간 독자들은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귀족들이 무슨 파업이냐" "나라 경제사정과 농민들의 아픔을 알기나 하는 사람들이냐" 등. 극심한 가뭄까지 계속되는 마당이어서 강도는 더욱 거셌다.

조종사 노조를 선봉에 세운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이 점화되려 할 때 한 시민단체 간부는 이렇게 말했었다. "90년 만의 왕가뭄에 경제도 최악인데 하필 이때에…. " 그러면서도 소위 '항공대란' 까지 가는 파국만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기대했었다.

이렇듯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애초부터 명분이 약했고 더욱이 불법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걸 감수하고 파업을 강행한 그들이 지금 얻은 건 뭔가. 일터로 돌아간 그들의 손익계산서는 적자(赤字)쪽으로 한참 가 있다.

노.사 동수(同數)의 운항규정심의위원회 구성, 외국인 조종사 감축 등 주장이 일부 수용됐지만 당초의 요구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오죽하면 14일 새벽 노사합의안을 놓고 "하나도 얻은 게 없지 않으냐" 는 노조 내부의 거센 비판이 있었다.

그러고도 이미지 실추는 물론 이틀간 발생한 수백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사측으로부터 요구받을 처지가 됐다.

회사측에 '고소.고발 취하, 징계 최소화' 등을 요구해 약속받은 점도 당당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결국 얻은 것 없이 타격만 입은 셈이다. 지난해 의사 파업에 이어 전문직종에 대한 신뢰를 또 한번 무너뜨리는 결과도 낳았다.

노동운동사 한편에 기록될 2001년 6월의 항공기 조종사 파업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 그 과정에서의 상처와 신뢰를 회복하는 건 조종사들의 몫이다.

성시윤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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