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월드컵 잘 치를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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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1 컨페더레이션스 컵의 결승전인 일본-프랑스 전을 지켜본 우리의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하기만 했다.

***축구 강국으로 성장한 日

특히 내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리허설과 경기력 점검을 겸해 치뤄진 이번 대회는 한.일 양국간의 특수한 관계와 과거 양국간의 축구 역사, 그리고 2002 월드컵을 같이 개최해 세계인 앞에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는 상대인 일본의 경기라는 점에서 우리의 실망은 더욱 컸다.

필자는 1996년 5월 중앙일보에 쓴 글에서 2002년 월드컵 유치경쟁이 너무 과열됐을 때 국민과 관계자들은 단독 개최만 고집하는 감정적 여론에만 집착하지 말고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을 고쳐서라도 한.일 공동개최를 해 국조(國祖) 단군 이래의 쾌거인 88서울올림픽의 영광을 지켜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2001 컨페더레이션스 경기를 지켜보면서 공동개최를 주장한 필자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었나 하는 깊은 우려와 함께 일종의 자괴심(自愧心)마저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축구는 일제치하 때도 망국의 애환과 같이 성장해 대(對)일본전에 있어서는 우리가 한손을 접고 일본 선수를 가르쳐 왔기 때문에 경기에 일진일퇴는 간혹 있을 수 있으나 축구만은 이러한 창피한 꼴을 볼 줄 몰랐다.

월드컵 개최의 성공은 무엇보다 개최국 대표팀의 성적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최국인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서 성적이 나빠 흔히들 말하는 '남의 잔치' 치러주기에 급급하게 된다면 얼마나 참담한 역사의 아픈 상처가 될 것인가.

다 알다시피 일본은 87년부터 '숙적 한국 타도' 를 내세워 어린이 축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J리그를 창설해 축구의 국민적 붐을 일으키고 대표팀 육성에 전력투구, 지난 10여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이번 2001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보는바와 같이 세계 최강 프랑스팀을 누를 뻔한 축구 강국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한.일 공동개최를 따온 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축구협회는 그간 얼마나 많은 돈을 써가며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협회의 기본 과업인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대표팀 감독만 바꾸는 것을 능사로 알지 말고 모든 축구인의 지혜를 모으고 힘을 결집했는지, 또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조직위원회도 그동안 조직의 합리적 인원관리와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는 등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지 국민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다.

산하단체를 리드하고 지원해야 할 대한체육회는 2002년 월드컵대회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필자는 이번 대회를 보고 우리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 한마디 하고 싶다. 언론은 과연 우리 대표팀의 기량을 제대로 분석하고 국민에게 이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축구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 우리 팀이 4강에 든다느니, 프랑스를 이길 수도 있다느니 하며 시청자와 독자에게 부질없는 기대감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주지 않았나. 또 이번 대회의 결과를 심층분석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그 대응책을 과감히 제시해 주었는지 묻고 싶다.

***개최국 성적에 성패 갈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다. 지금과 같이 안이한 대처로 시간만 끌어 2002년 월드컵에서 예선에서 탈락하고 국민적 무관심 속에 기계적으로 행사만 치르는 참담한 모습을 1개월 동안 전세계 4백억의 시청자에게 보여주어 88서울올림픽의 영광과 긍지마저 당대에 훼손시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뼈아픈 자기성찰과 획기적 청사진을 세워 전체 축구인.전체육인,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축구협회.월드컵조직위원회.체육회가 정부의 효율적 지원 아래 유기적으로 결합, 대회 성공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인가.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철승 전 대한체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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