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이렇게 과격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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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사회가 왜 이리 거칠고, 과격해지는 걸까. 개인도, 단체도, 때론 아주 막가는 사람 같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할 것인지.

국사를 논하는 국회부터 과격하다. 거친 언행, 욕설, 폭력, 이런 정신상태에선 합리적인 국사 논의가 될 수 없다. 억지, 날치기, 그렇게 만든 법을 국민이 신뢰할 리가 없다. 법을 우습게 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노동현장의 과격시위도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기물파괴, 쇠파이프, 전쟁터가 무색하다. 그런 자세로선 공권력과의 충돌은 불 보듯 뻔하다. 파업이라는 강력한 수단이 있는데도 왜 이렇게 과격한 방법까지? 말 한마디 못하고 초조히 지켜만 봐야 하는 국민들로선 불안하다.

솔직히 두렵다. 해외 투자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이민을 떠난다 하고, 실업자는 늘고, 수출은 줄고, 두렵지 않다면 국민이 아니다.

이익집단의 시위도 만만찮다. 도로 점거, 방화, 무법천지 같은 판에 국민이 믿을 데라곤 공권력뿐인데 경찰마저 때론 과잉진압, 과격하단 지탄을 받게 되었으니. 이러고도 나라가 괜찮을건가.

백주대로를 막고 보도블록.화염병.쇠파이프로 경찰에 대항하는 현장. 정당한 공권력 집행도 못하고 경찰이 연금되고 무장해제까지 당해야 하는 이 현실 앞에 국민은 망연자실이다. 이 몇해 사이, 이게 한두번인가.

온건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지만, 이러고도 민주주의를 하겠다면 이건 망상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회라면 법치국가로선 간판을 내려야 한다. 정부가 어떻게 했기에 여기까지 왔나. 이렇게 무력한 정부가 왜 있어야 하나.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나라꼴이 이렇게 돼 가는 걸까. 조용히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자. 실은 나도 사회정신의학도로서 차분한 해결책을 걱정하고자 한 게 그만 혈압이 올라 과격하게 됐나, 깊이 반성한다.

과격!

이게 우리 사회 오늘의 화두다. 우리 민족성이 워낙 조급해 그렇다고들 한다. 급하니까 무리도 빚고 억지도 부린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니 그만 폭발할 수밖에 없다. 우린 목표 지상주의라 목표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부정, 불법도 물론이다. 그걸 숨기자니 열린 경영을 할 수 없다. 숨겨야 하니 노조를 설득할 수가 없고. 더내라, 안 된다, 피해의식이 발동하면 속았다 싶고, 불끈 화가 치민다.

노사 분쟁이 감정 싸움으로 치닫는 건 그래서다. 이익집단의 대 정부 항의가 과격화하는 것도 열린 행정이 못되기 때문이다. 밀실 정치, 행정, 기업 거의가 닫아놓고 하는데서 불신, 피해의식, 그리곤 화가 나서 감정이 폭발된다.

과격해진 분쟁 현장을 지켜보노라면 화풀이적 성격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 상대가 때론 공장기물일 수도 있고 정부청사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당장 눈 앞에 거슬리는 경찰이다. 여기가 제일 만만하다.

하지만 이 점이 가장 염려스럽고 위험한 생각이다. 한두 번 밀어붙일 순 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화풀이만은 안 된다. 화는 더 큰 화를 부르고 끝내는 서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내고야 만다. 술도 홧술이 사람을 잡듯, 화풀이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까지 파괴하는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시위대를 지휘하는 지도자도 여기까진 가지 않게 각별한 당부를 해주시길 국민의 이름으로 간절히 빈다. 경찰은 나라의 법이다. 경찰을 우습게 아는 나라치고 민주주의가 되는 곳은 없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경찰이 무슨 죄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충실히 임무수행 중이다. 그 속엔 내 귀여운 동생도 있다. 갓 스물의 피끓는 젊은이, 아직은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란 사실도 잊지 말자. 서로는 원수진 사이도 아니다. 격려는 못할망정 자극은 말자.

심호흡 크게 하고 조금만 멀리보자. 그리고 합리적 설득, 합법적 투쟁, 당장은 약해 보이지만 끝내는 이게 이긴다. 이게 민주사회의 진정한 힘이다. 그럴 때 여론도 편이 돼 주기 때문이다.

1백년 만의 큰 가뭄, 잔뜩 신경이 날카로운데, 또 대규모 파업이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슴을 죈다. 제발.

이시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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