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경찰 발목잡는 '최루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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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경찰관서에 들러봤거나 경찰관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경찰의 바뀐 모습에 크게 놀란다.

일선 경찰서 민원담당 창구와 파출소 내부 구조가 '고객 만족형' 으로 변한 지는 이미 오래다. 주민이 들어서면 근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친절하게 민원인을 맞는다. 마치 은행에 온 것 같다. 경찰서나 파출소 여유공간에 독서실과 놀이방이 들어서고, 주민전산망을 활용해 이산가족의 한까지 풀어준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이 금품으로 어떻게 해보려다가는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고 심하면 구속까지 된다. 근무여건과 처우가 개선되면서 고학력 인재들이 경찰에 속속 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자주 문제로 지적되던 사찰활동이나 정보수집 업무도 법테두리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 하면 연상되던 '국가보다 정권에 충성하는 조직' '음험한 밀실 고문' '폭력.부패' 등 부정적 이미지가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경찰 본연의 임무와 기능에 충실하려는 15만 조직원들의 몸부림이 도처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최근 시위현장에서의 경찰 대응은 이같은 움직임을 무색케 한다.

시위대가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각목.쇠파이프로 방패와 투구를 마구 내리쳐도 반응이 없다. 폴리스 라인(정찰 저지선)띠를 들고 서있는 여경들에게 계란 수백개가 투척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날계란에 범벅이 된 여경들 뒤편의 진압 경찰들은 충혈된 눈으로 이를 지켜만 본다.

시위대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사를 점거하려 해도 몸으로만 밀쳐낼 뿐이다. 대로변에서 경찰에 화염병이 날아오지만 방패로 막는데 급급하다.

폭력이 과격해지고 대로가 불바다로 변한 뒤에야 경고방송을 하고 진압에 나선다. 시위주동자나 폭력행사자 등에 대한 증거수집(채증활동)이 끝난 뒤에야 움직이는 느낌이다. 과잉진압의 시비에서 벗어나려는 보신주의적 계산도 엿보인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같은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불법 폭력시위 현장에서 자존심마저 구겨가며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경찰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처사다.

이 정부 들어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을 추방하겠다고 발표했다. 폴리스 라인을 엄격하게 지키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국법질서나 공권력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국민들로부터 많은 박수와 격려도 받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같은 다짐은 실종됐다. 다만 '최루탄 불사용' 이라는 약속만은 온갖 피해와 수모에도 불구하고 신주단지처럼 지켜진다.

한 경찰 고위간부는 "화염병 시위 진압에는 최루탄이 가장 효과적인데 사용을 못하고 있다" 며 " '최루탄 불사용 선언' 이 공권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 이라고 말한다.

이무영(李茂永)청장 등 경찰 수뇌부는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을 추방했다는 티끌같은 실적보다 국법질서 준수와 엄정한 법집행이라는 경찰의 규범적 기능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형사.방범.보안.정보.경비.교통 외사 등 각 분야에서 15만 경찰이 소관업무를 법대로만 처리한다면 굳이 '수사권 독립' 같은 말이 필요없다는 생각이다.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리의 재판관' 은 판.검사가 아니라 15만 경찰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김우석 전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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