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잉카제국은 왜 몰락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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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페루에 지난 3일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탄생했다.

중앙일보(http://www.joins.com)는 5일자 11면에 『 ‘잉카 재현’ 인디오 열광 첫 원주민 대통령 탄생』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관련 기사로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에 당선된 알레한드로 톨레도(55)씨를 소개했다. 이 기사를 이해하려면 잉카 ·인디오 등과 페루의 역사 ·민족 ·정치 ·경제 상황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남미 중부 태평양 연안의 페루는 인구가 2천5백만명이다. 이 가운데 인디오 원주민이 45%, 혼혈인 메스티소(인디오+백인)가 40%에 이른다. 신대륙 발견 후 3백년 가까이 페루를 지배했던 스페인계 등 순수 백인은 11% 정도다.

그러나 1821년 페루가 독립한 뒤에도 백인들이 대통령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일본계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조차 대통령이 됐으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은 없었다.

백인은 정치와 행정은 물론 부(富)도 독점했다. 수도 리마를 비롯해 발전한 해안지방에 살며 지배계층으로 자리잡은 백인에 비해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은 안데스 산간지방에 거주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페루는 현재 지난 10년간 통치한 후지모리 대통령이 정치인 매수 스캔들로 탄핵돼 축출되면서 정치 불신이 극심하다. 경제도 1년 넘게 지속된 정국 혼란과 겹쳐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1.5%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페루 국민은 원주민 출신 구두닦이 소년에서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로 변신한 톨레도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 인디오들은 톨레도가 승리하던 날 '잉카제국의 영광 재현' 을 연호했다.

7월 28일 대통령에 취임하는 톨레도는 리마에서 공식 취임식을 한 뒤 잉카제국 도읍지였던 마추픽추 계곡의 쿠스코에서 취임식을 한 차례 더 열 예정이다. 톨레도는 취임식을 통해 잉카문명의 영광과 권위를 되찾겠다는 각오를 다질 생각이다.

◇ 잉카제국

'황금의 나라' 잉카는 12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페루.볼리비아)을 지배한 고대 제국이다. 동시에 그 지배계급도 잉카라고 칭했다. 잉카족은 케추아족으로도 불리는 페루 인디오의 한 집단이었다.

서기전 2000년께 중앙 안데스 지방에는 초기 신전이 출현했다. 그 후 차빈.모티카.나스카.티아우아나코 문화 등이 잇따라 번영했다. 서기 1200년께에는 지방국가 형성기에 들어가 각지에 왕국 등 정치조직이 나타났다. 잉카제국은 여러 왕국 중 가장 늦게 일어나 안데스 지역 전체를 통일하는 국가를 형성했다.

이 제국을 건설한 잉카족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13~14세기 잉카족이 쿠스코를 본거지로 영토를 확장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쿠스코는 높은 산들이 주위를 에워싼 계곡으로 해발 3천4백m다.

잉카제국 전성기엔 오늘날의 콜롬비아 남부.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칠레 북부.아르헨티나 일부까지 세력을 떨쳤으며, 2천5백만명의 백성을 거느렸다. 하지만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군대에 멸망해 영화를 누린 기간은 비교적 짧았다.

잉카 문명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치.사회조직이다. 피라미드식 계급체계를 갖췄는데 정점엔 황제가 있고, 황제의 친족인 지배층과 평민으로 계층사회를 형성해 중앙집권적 전제정치를 폈다. 그러나 토지를 적절히 분배해 빈부의 차이를 줄이는 등 평민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춰 잉카를 신권적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제국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 활동주제

①표를 보고 우리나라와 페루를 비교한다.

②백지도에 현재의 페루와 잉카 전성기 영토를 비교.표시한다(페루와 국경을 이루는 나라도 기록할 것).

③중남미에 발달했던 인디오 문명은 잉카 외에 마야.아즈텍 문명을 꼽을 수 있다. 각 문명의 발달지역과 사회.문화.정치 특성을 알아본다.

④잉카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한 수단은 무얼까.

⑤잉카인은 주식으로 옥수수를 익히거나 볶아서 먹었다. 오늘날 팝콘의 기원이다. 이들이 고산지대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⑥수도 쿠스코는 상.하수도 시설을 갖췄으며, 전성기엔 인구가 20만명에 이르렀다. 잉카가 쿠스코를 수도로 삼은 것은 그들이 섬기던 태양신과 무관치 않다. 잉카 신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본다.

⑦잉카의 결혼식은 해마다 한 차례 날짜를 잡아 합동으로 치렀다. 연령은 남자 24세, 여자 18세로 날짜가 가까워져도 남자가 배필을 찾지 못하면 관리가 대신 구해줬다. 우리나라는 현재 짝이 없는 농촌 총각들이 많다. 해결방법을 토론한다.

⑧피사로가 1백68명의 군인을 이끌고 잉카를 침공했을 때 잉카의 아타우알파 황제의 병력은 8만명이나 됐다. 그럼에도 제국이 막을 내린 이유는 뭘까. 또 당시 피사로에게 잡힌 황제는 20조원 어치의 황금을 내밀며 풀어달라고 했으나 피사로는 거부했다. 내가 피사로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⑨잉카문명은 이전의 모든 문화 유산을 다듬어 완성하는 일을 했다. 통일신라와 비교해 공통점을 찾아 설명한다.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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