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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시작전권 전환, 제3의 길 모색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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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천안함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결연한 각오를 갖고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국격과 국익에 부합하는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한의 개입 여부에 관계없이, 이번 사고의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 군의 작전능력에 대한 점검은 물론 육·해·공 3군의 균형발전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또 다른 차원에서 불똥이 튈 부분은 바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선 2012년 4월 17일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근거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으로 안보여건이 나빠졌고, 우리 군의 대비태세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건 자체와 이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을 보면서 전작권 전환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20년 끌어온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북·미, 4자, 6자 등 온갖 회담을 다 해봤으나 별무성과다.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한 북한 정권에 ‘핵포기 결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예사로운 방법으론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국가 간의 합의사항인 전작권 전환 결정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연기’론이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안보환경이 개선될 때까지 시점을 늦추자는 것이다. 바람직한 대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연기’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아쉬워서 매달리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상대인 미국이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전작권 연기에 ‘올인’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따라서 발상을 전환해서 북핵 폐기와 안보 강화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한 전략적 마인드가 요구된다. ‘원안 고수’도 ‘무작정 연기’도 아닌 새로운 카드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는 얘기다. 제3의 카드는 바로 아버지 부시의 결정으로 1991년 9월 철수된 주한미군 전술핵무기의 일부를 한시적으로 재배치하도록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다.

골자는 전작권 전환 시일인 2012년 4월 17일을 시한으로 설정하고, 그때까지 북핵 협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주한미군 전술핵의 남한 재배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만약 이 시점까지 북핵 협상이 타결되면 ‘재배치 준비’는 취소된다. 하지만 협상이 실패하면 일정 규모의 전술핵을 북한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재배치한다. 전작권 전환과 전술핵 재배치를 맞바꾸고, 북핵 문제를 북한 대(對) 한·미 간의 쌍방 핵군축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향하는 한국과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전술핵 재배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으로선 ‘북한 핵에 대응해서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

이 방안이 갖고 있는 전략적 요소는 이렇다. 우선 북한의 핵보유 의지가 강한 만큼 아무런 대책 없이 협상에만 매달릴 수 없으며 안보를 위한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군사적 대비태세 완비’라는 전작권 전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데, 가장 확실한 대응방안은 남한 땅에 핵을 두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하고 협상을 촉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가 된다. 또 한·미 정상이 2009년 6월 공동비전에서 합의한 핵우산 강화 약속을 실천하는 보증수표임과 동시에 북한이 주장하는 핵군축 협상에 한·미가 전술핵을 자산으로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된다.

아울러 중국을 적절히 자극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 6자회담 주최국인 중국이 관련국들의 인내를 주문하며 느긋해 하는 사이에 북한의 핵 능력은 네 배로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술핵 재배치는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이 ‘북한 핵’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남북 간 교류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전방위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하고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