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진실의 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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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늘 웃는 얼굴만 보여주던 이영자씨가 기자회견장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드러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터넷에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에서부터 '그 눈물까지도 한편의 기만극이다' 까지 다양한 의견이 올랐다.

***울먹이는 이영자씨 모습

거의 십년 전께 방송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솔직하고 당당한 표정이 맘에 들었다. '저 자신감은 고생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이다' 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인기가 차츰 올라가면서 '그녀는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하는 의혹이 들기 시작했다.

'일요일 일요일밤에' 를 연출할 때인데 프로그램 중에 '영자의 방' 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그녀가 영화 패러디의 여주인공역을 하는 꼭지였다. 그날의 부제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였는데 PD인 나는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최진실씨를 주인공으로 할 구상이었다.

물론 이영자씨는 조역이었다. 지금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지만 그때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다. 이영자씨는 대본을 받고 몹시 당황(황당?)해 하며 "이번 회엔 출연을 않겠다" 는 것이었다.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촬영이 한창일 때 그녀가 나타났다. 그냥 엑스트라로라도 출연하겠다는 거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그의 뜻에 따랐다. 주변 스태프 중 하나가 지나가는 말로 "영자를 물로 보지 마세요" 라고 건넬 때도 수긍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녀가 살을 뺀 후 "최진실 같은 날씬한 배우가 한없이 부러웠다" 고 고백했을 때에야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뜻밖에도(?)그녀는 늘 자신의 풍만한 몸에 대해 불만이었고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것이다.

그녀가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이 한마디만 추가했으면 참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실 살 빼려고 온갖 짓 다 해 봤어요. 뭐 수술인들 안해봤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운동이더라구요. " 그랬다고 시청자들이 그녀를 거부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솔직하다고 느껴 동정표가 모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말만은 쏙 뺐다. 그녀가 통곡하며 하는 말. "여자로서 그런 말까지 할 수는 없었죠.

실제로 효과도 없었구요. " 그러나 그녀처럼 변하고 싶은 많은 이들(그 판단의 미추와는 무관하게)을 진정 도와주고 싶었다면 그녀가 시도해본 모든 성공과 실패사례들을 다 말했어야 했다.

촬영현장에 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앵글에 잡힌 카메라 화면을 조금만 확대하면(줌 아웃) 온갖 볼썽 사나운 것들이 다 걸려든다는 사실.

동시녹음을 위한 마이크와 조명기구는 물론 곁에서 숨 죽이며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죄다 포획된다. 조작 파문을 빚었던 '다큐멘터리 수달' 도 화면을 조금만 펼치면 인간이 설치한 철조망이 꼼짝없이 걸려들었을 것이다. 코미디언의 삶도 스스로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에선 진실이 테마일 수밖에 없다.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라

이제 다시 그녀와 함께 운동에 들어가자. 뱃살도 빼고 군더더기 욕심살도 빼는 운동. 이영자씨는 내가 보기에 물 같은 여자라기보다 불 같은 여자였다. 그녀가 연기에 열중할 때는 화면에 불꽃이 튀었다. 누전의 원인은 과부하라고 한다. 욕심의 불씨는 결국 불을 내고 만다.

남산에서 반딧불이 60여마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누군가 공들인 결과일 것이다. 반딧불이는 개똥벌레다. 그 노래가 참 명곡이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 걸. " 개똥무덤에 태어났으니 그런 모습 그대로 살다 죽으란 말이 아니다. 변신은 무죄다.

그러나 딱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그 프레임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애써 숨기지는 말라는 게 대중의 요구다. 개똥벌레는 어둠 속에서 잉잉거리며 빛을 발하는 존재다. 그 이름이 개똥이면 어떤가.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앞당기는 그 벌레보다 못한 삶들이 오죽 많은가.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 · 언론홍보영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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