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미 철강수입 규제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흥분하거나 성명서 발표와 같은 형식적이고 외교적인 대응보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실리적 전략을 택해야 한다. "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지난 6일 수입 철강제품으로 인한 자국 업계의 피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현재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석한(金碩漢)변호사를 비롯한 통상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피해 조사를 마치고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취하려면 앞으로 6개월이 걸린다" 며 "이 기간에 미 행정부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측 입장을 이해시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한다.

◇ 요란한 구호보다는 실리적인 전략을〓7일 외교통상부와 산업자원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이번 조치가 "유감스럽다" 며 ITC의 공정한 판정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외교적 접근보다 실리적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金변호사는 "한국의 통상 관계자들은 부시 행정부의 관료들이 기업체 근무 경험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며 "결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기업 마인드로 무장한 관료들을 다루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주장해 온 공화당 정부다. 그런 면에서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 비하면 근본적으로 통상 압력에 무게를 싣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철강수입 제한 검토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만큼 ITC가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강도는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 국내의 대응에 따라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수입철강 원하는 미국내 산업 이용해야〓미국의 다른 산업.노조는 철강업체.노조와 입장이 다르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 소비산업업종행동연합(CITAC)은 지난달 철강수입 규제 철폐 성명을 내고 "철강업계가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수입 제한 등을 시행하는 바람에 자동차.가전 등 싼 외국산 철강으로 제품을 만드는 미국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됐다" 며 "철강산업 보호로 3천7백명의 일자리가 유지됐지만 대신 철강을 사용하는 산업에선 최대 3만2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고 주장했다.

김주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내 다른 산업을 압력단체로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 라며 "특히 열연.냉연강판 등 대미 수출비중이 50%에 달하지만 아직 규제를 받지 않고 있는 품목을 선별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 빌미 주지 말아야〓ITC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세계 철강산업의 보조금 삭감, 과잉설비 해소를 명분으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보철강을 채권단이 지원해 살려 놓고 있는 것이나 한영철강 등 법정관리 중인 업체가 대미 수출을 하는 것 등을 미국은 보조금 지원으로 꼬투리를 잡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기회를 빌려 부실 기업은 정리하고 경쟁력 없는 업체는 통폐합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정재.김남중.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