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무엇을 어떻게 고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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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15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앞두고 여러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그 중 성균관대 김일영(金一榮)교수의 '6.15 공동선언과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와 전망' 이라는 주제 발표문이 관심을 끈다. 金교수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JP.家臣의 덫에 발목잡혀

"DJ 정부는 개혁과 포용이라는 두 정책과 의원 영입 동진정책 같은 정치공학적 노력을 통해 국가-사회관계와 남북관계라는 두가지 균열구조를 해결하고 지역 및 의석면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치공학적 노력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개혁정책은 좌우로 협공을 받아 난관에 봉착했으며 포용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은 열기가 식은 상태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

왜 이런 곤경에 빠졌는가. 내부 개혁은 게을리한 채 개혁의 칼날을 외부로만 돌렸기 때문이다. 왜 자체 개혁을 하지 못하는가. 자민련이란 외부의 덫과 가신이라는 내부의 덫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DJ 정부가 수의 정치를 포기하고 상생의 정치로 가기 위해선 JP와 가신이란 두가지 덫에서 벗어나 제살깎기부터 추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이 정부가 추진하는 어떤 개혁정책과 정치공학도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결론짓고 있다.

6.15 선언 1주년을 1주일 앞두고 벌어지는 북한 상선의 북방한계선(NLL).영해 침범과 이른바 정풍파동의 끝마무리가 될 13일 대통령의 국정쇄신안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개혁과 포용' 에 대한 종합적 반성을 시도할 때다. 나는 김일영 교수의 지적과 같은 맥락에서 개혁과 포용이 지닌 몇가지 문제점을 추가 보완코자 한다.

먼저 DJ 정부의 '개혁과 포용' 정책을 중심과 주변의 논리로써 조명해 볼 수 있다. 어느 사회나 중심문화와 주변문화는 갈등 내지 상극 관계다. 중심이 굳이 보수라면 주변은 진보의 자리다. 잘되는 사회일수록 중심과 주변의 갈등구조가 상생을 거쳐 정반합(正反合)의 발전을 거듭한다. 지난 대선에서의 정권 교체는 주변이 중심을 차지하는 대지각 변동이었다. 그러나 주변 세력이 정권의 중심은 장악했지만 사회의 중심세력화는 되지 못했다. 주변세력이 사회 주류를 장악하지 못했을 경우 좌파성향의 주변세력은 우경화.보수화의 노력을 통해 메인 스트림에 합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 없이 재벌개혁.교육개혁.의료개혁에 뒤이어 언론개혁을 다그치고 있다.

개혁이란 힘이 있는 정권 초기에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졸속과 속도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성이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개혁 프로그램은 현실성과 적합성을 잃으면서 중심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좌초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의료개혁이 그 대표적 사례다. 대북 포용정책 또한 지난 6.15 선언 이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화해와 안보라는 원칙이 엇갈리고 교류와 협력이 투명성을 잃고 제도화되지 못한 채 바람의 흔적만 남은 원점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중심과 주변간의 대화와 공감 없이 마찰과 상극만 극대화시킨 '개혁과 포용' 이 아니었는가.

또 '개혁과 포용' 이 졸속과 속도전으로 치달으면서 너무나 많은 적을 양산했다. 중심세력을 적으로 돌리면서 주변의 정당성만을 강조하는 외통수 개혁과 포용에 치우쳤다. 북과의 포용만을 강조했지 남남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개혁의 주체여야 할 중심세력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임으로써 개혁과 포용이 빛을 잃었다.

***내부 敵 치라는 정풍운동

개혁 주체여야 할 교사.의사.언론인을 개혁과 청산의 대상으로 모는 편가르기에 개혁과 포용이 중심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개혁 피로.개혁 반감 현상이 먼저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 金교수 지적대로 정권 내부의 전근대성은 탈피하지 못한 채 외부의 개혁만을 외치고 있으니 개혁의 정당성이 바로 서지 않는다.

포용정책이 최대 적일 수밖에 없는 자민련과의 연합, 정권이 열세에 몰릴 때마다 세력화하는 가신그룹의 존재는 DJ개혁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훼손하는 내부의 적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공적 체계를 사적 체계인 가신그룹이 장악하고 있으니 내부의 적을 치라는 정풍운동이 일어난 것인데도 정권 핵심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직도 1년반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이 남아 있다. 내부의 적을 척결하고 포용과 상생으로 중심세력을 장악하면서 개혁을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국정개혁의 골자가 돼야 DJ 정부의 개혁과 포용이 제자리 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영빈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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