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성모병원 자원봉사자 비지땀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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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지난 4일 오후 2시 강남성모병원 외과병동 5211호실.

하얀 셔츠에 분홍 가운을 입은 박종순(52)씨가 위 수술로 1주일째 거동을 못하는 60대 여자 환자의 머리를 감기고 있다. 샴푸 거품을 내며 꼼꼼히 환자의 머리를 감긴 한씨는 "개운하다" "고맙다" 고 말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가벼운 미소로 답례한 뒤 용구를 챙겨 서둘러 다른 병실로 이동한다. 같은 시간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

한씨와 똑같은 복장의 두 아주머니가 죽음을 앞둔 암환자의 다리와 어깨를 주물러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서 저 세상으로 간 남편과의 젊은 시절 추억, 그 뒤로 자녀를 키우며 섭섭했던 일 등…. 환자가 가늘게 이어가는 말을 들으며 그들은 함께 웃고 눈물을 흘린다.

환자들은 병원의 자원봉사자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이들은 의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병들고 아픈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고통을 어루만져준다. 때론 일손이 달리는 의사.간호사의 손발이 되기도 한다.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http://cmc.cuk.ac.kr/kangnam)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3백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는 곳. 지난 3월 병원측은 아예 자원봉사센터를 설립하고 4월부터는 12주과정으로 ▶환자 심리와 의사 소통▶아동.노인 환자의 특성▶기본적인 간호요령▶봉사자의 서비스 예절 등을 가르치는 한편 봉사업무도 개인별로 전문화했다.

자원봉사는 건강하고 여유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영어강사인 정종명(58)씨는 두달전부터 매주 월요일엔 강의를 쉬고 강남성모병원으로 출근한다. 하룻밤을 이곳에서 지샌 뒤 다음날 새벽 집이나 강의실로 향한다. 정씨는 " '오랜 병에 효자 없다' 는 말이 있듯이 간호하다 지쳐버린 환자 가족들이 하룻밤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대신 밤샘 간호를 한다" 고 말했다.

매주 금요일 일반병동 도서실에서 환자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는 배경상(55)씨. 그는 자신이 지체장애인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벌써 이곳에서 17년째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 안내와 대화상대.도서정리와 같은 가벼운 일에서부터 호스피스.병원물품작업.놀이방 보조 등 궂은 일도 마다 않는다. 그렇다고 병원 직원들의 업무보조나 대체업무는 아니다. 육체노동이라해도 스스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활동들이다.

자원봉사센터 강영숙(44)코디네이터는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가족이 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고 설명했다. 병 간호로 지쳐 있을 때 환자를 대신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거나, 직접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보호자 없는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선배 자원봉사자의 활동을 보고 자원한 사람들이라는 것. 동병상련을 체험한 40~50대 가정주부가 단연 많다.

자원봉사자들은 보통 1주일에 반나절 가량 짬을 내 봉사활동을 한다. 물론 이들에겐 병원측의 어떤 혜택도 없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오로지 환자의 밝은 웃음 뿐이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자원봉사를 해온 강영자(61)씨는 "처음 대면할 때 눈길조차 주지 않던 환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굳게 닫힌 마음을 열 때 보람을 느낀다" 고 말했다.

유지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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