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책사업 책임 누가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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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0년, 20년 전 시작된 사업과 관련한 공무원들을 찾아봐야 옷 벗은지 한참 됐으니 징계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대형 국책사업 중에 공무원 손에서 결정된 게 뭐 있습니까. 하나같이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앞뒤 재지 않고 삽질부터 했다가 잘못된 것들인 데요. "

시화호.새만금 등 과거 졸속으로 추진됐던 대형 국책사업의 후유증으로 온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는 요즈음.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는 기자의 지적에 만나는 공무원마다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1960년대 이후 정치인들의 전시성 결정→주먹구구식 계획→부실 설계와 시공→공기 지연과 사업비 증가→만성 적자운영의 악순환이 수십년째 되풀이되는 데도 정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

취재팀이 한달여간 경부고속철도.신항만.인천국제공항 등 대형 국책사업의 현장취재에 나선 취지는 바로 이들 사업의 전철을 교훈삼아 이같이 오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책사업을 결정.진행하는 과정이나 사후에 책임을 묻는 평가과정까지 온통 허술하기만한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이들 사업의 미래 역시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자칫하면 우리나라 한해 예산과 맞먹는 1백4조원의 귀중한 예산(총사업비 1조원 이상, 국책사업 39건 기준)만 날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면피주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국책사업 결정단계부터 공사진행 과정까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정치적인 외풍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후평가 과정을 의무화해 일단 시작된 사업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중도에 퇴출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권에서 무리한 사업을 밀어붙일 수가 없지요. "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김재형 소장)

"선진국에선 사업 추진과정을 백서로 꼼꼼히 기록했다가 그 결과를 낱낱이 공개합니다. 세금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은 국민이 사업자금을 대는 셈인데, 사업비가 몇조원씩 늘어나도록 국민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 김헌동 대표)

우리 정책 당국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들이다.

신예리 기획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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