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사들 개업도 취업도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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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2월 W대 한약학과를 졸업한 趙모(31.서울 관악구)씨는 두달 전에야 부모 소유의 집 1층에 한약국을 차렸다. 그러나 손님은 많아야 하루에 두세명이고 전혀 없는 날도 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고, 한의사 처방없이 조제 가능한 한약 가짓수도 1백가지로 제한돼 있어 외면당하고 있다" 고 그는 말한다.

趙씨는 모 대학 기계공학과에 다니다 군제대 후 한약학과가 처음 생긴 1996년 뒤늦게 이 학과에 입학했었다.

당시 입학생 대부분의 수능시험 성적이 전국 상위 5% 이내였을 정도로 인기가 있던 학과였고 "전망있는 업종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싶다" 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지난해 1월 정부가 한약학과 출신의 약사고시 응시자격을 박탈해 버렸고, 한방병원과 제약회사에서는 이력서도 내기 전 채용을 거절했다.

'한.약(韓.藥)분쟁' 의 타협안으로 탄생한 한약사 제도가 표류하고 있다.

분쟁이 치열하던 94년 초 "한의약 분야에서도 3년 내에 의약분업을 하겠다" 는 정부의 구상에 따라 실시된 제도다.

◇ 오갈 데 없어진 한약사=관련 법.제도의 미비로 한약사 자격증을 딴 한약학과 졸업생들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한의원.약국에서 자체적으로 한약을 조제하기 때문에 한약사를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는 것도 원인이다.

현재 한약사 면허를 딴 2백48명 중 한방병원에 취업하거나 한약국을 차리는 등 관련 업계에 취직한 인원은 22명(약사 76명 제외)뿐이다. 지난해 2월 한약학과를 졸업한 李모(24.여)씨는 "석달 동안 한방병원 수십곳에 취업을 지원했으나 한결같이 거절당했다" 며 "정부가 한약사 제도를 만들면서 선전한 것들 중 제대로 시행된 것이 없다" 고 항변했다.

◇ 자퇴.전과 속출=또 다른 W대 한약학과에 다니던 朴모(26.여)씨는 올초 약학과로 전공을 바꿨다. 그는 "졸업 후 진로가 불투명해 학년마다 몇명씩 매년 자퇴하고 있다" 고 말했다. 원광대 한약학과 김형민(金炯珉)학과장은 "취직이 어렵자 3, 4학년 재학생 80명 중 절반 이상이 자퇴했다" 며 "교수 입장에서도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 상황으로는 한약국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1백가지 이상 조제를 허용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며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법개정에 대한 고려는 하지않고 있다" 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홍신(金洪信.한나라당)의원은 "처방 제한을 철폐하고 한방병원에 한의사를 의무적으로 고용케 하는 등 한약사 제도와 관련한 법 개정을 올해 중 적극 추진하겠다" 고 지적했다.

홍주연.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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