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사랑 퍼뜨리는 천안 ‘베토벤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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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음악동호회 ‘알피네’ 단원들이 내달 3일 창단공연을 앞두고 막판 연습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손인환(우측 서있는 사람) 지휘자는 이번 연주회를 통해 이웃과 소외계층에 한 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조영회 기자]

지난 23일 오후 7시50분, 천안시 쌍용1동 한 상가건물 지하 1층. 어둠이 드리워지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깨에는 하나같이 크고 작은 케이스를 걸머졌다. 무슨 결사모임이라도 있는 듯하다. 그들의 뒤를 따라 내려가니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호른·플루트·색소폰·바이올린·비올라 등 각종 관현악기의 불협화음이 어지럽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너나 없이 각자 악기의 음을 조율하느라 분주하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알피네(Al Fine)’ 단원들. 다음 달 3일(오후7시30분 천안시청 봉서홀)로 예정된 창단연주회를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순수 아마추어 음악동호회

10분쯤 지났을까? ‘따닥 따닥’ 작대기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에 어수선하던 연습실이 일시에 잠잠해진다. 단원들의 시선이 지휘봉을 잡고 서 있는 한 사람에게 쏠린다. 상임 지휘자 손인환씨다. 그의 손끝이 허공을 휘젓자 단원 4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연주에 몰입한다. 연습이지만 표정들이 자못 엄숙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귀에 익은 곡이다. 표향원(47·여) 총단장이 가수 진주의 ‘난 괜찮아’라고 귀띔했다.

알피네는 순수 아마추어 음악동호회다. 단원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폭 넓고 약사·교사·회사원·주부·자영업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 공통분모는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점이다. 현재 단원은 50여 명으로 가족 같이 지낸다. 그래서 호칭도 나이에 따라 ‘언니·누나·형·동생’이라고 부른다.

평소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만 연주에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마추어라고 대충 대충하다간 가차없이 지적을 받는다. ‘똥덩어리’란 소리 안 들으려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카리스마의 주인공은 상임지휘자 손인환씨. 단원들은 그를 ‘손마에’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손 지휘자는 이 별명에 손사래를 친다. “난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이라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같은 엘리트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변한다. 단원들도 이 점에 모두 수긍한다. 연습 땐 눈물 빠지게 다그치다가도 뒤풀이 등을 통해 다독여준다고 한다. 화음 못지않게 마음 다루는 데도 마에스트로급이란 얘기다.

알피네의 전신은 쉐네앙상블이다. 손 지휘자가 자신이 운영하던 음악학원의 제자들과 의기투합해 2008년 만들었다. 처음 5명이던 단원은 입소문을 타면서 2년 만에 10배로 늘어났다. 2009년 9월 새로 이름 붙인 ‘알피네’는 음악용어로 ‘끝까지’라는 뜻이다. 표 총단장은 “음악과 악기와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피네의 성장을 얘기할 때 단무장인 김영진(32)씨를 빼놓을 수 없다. 단원들 사이에서 “여성보다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평가 받는 그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단원들이 뭉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카페는 음악상식뿐 아니라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누는 동호회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알피네의 운영철학은 독특하다. 개인의 연주실력을 뽐내거나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라 음악으로 소외 계층에 사랑을 전하고 그들과 하나 되는 봉사를 하자는 것이다. 또 단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내부에 여러개의 소규모 앙상블 팀을 만들어 자체 경쟁을 유도한다. 동호회 차원이라도 실력이 처지면 오케스트라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악보를 보며 관현악 연주에 몰두한 단원들. 진지한 자세가 프로 연주자 못지 않다.

음악으로 이웃과 소통

알피네는 이번 창단 공연을 앞두고 두 차례 봉사음악회를 열었다. 열린성애병원·기독성심원 등 정신장애인들 앞에서다. 이때 단원들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공연 도중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첫 공연은 단원들의 선입견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정신은 온전치 못하지만 마음만은 더 없이 순수한 그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관현악 연주에 귀 기울이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단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망설이던 창단 공연의 자극제가 됐다.

이번 창단공연의 취지는 음악을 통해 이웃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레퍼토리도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 주제곡 등 대중에게도 친숙한 곡을 다수 넣었다. 알피네는 창단공연을 기점으로 사회봉사 음악활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문의= 김영진 단무장 016-473-9233

글=장해균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알피네 표향원 총단장
영화음악·팝 등 귀에 익은 레퍼토리 “편히 즐기세요”

알피네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를 열흘 앞둔 지난 23일, 공연 성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표향원(사진) 총단장을 만났다. 그는 “단원 모두가 열정을 쏟았기 때문에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쳐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음은 표 총단장과의 일문일답.

Q: 첫 대규모 공연인데 떨리지 않나.

1년여 간 단원 모두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음악적 완성도는 몰라도 열정만큼은 프로 연주자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넘치는 열정으로 손과 입술이 아프도록 수많은 연습을 통해 하나가 됐다. 알피네 오케스트라는 시민들의 마음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선율을 선사할 것이다. 기대해달라.

Q: 아마추어 동호회 치곤 규모가 크다.

나 스스로도 놀라울 뿐이다. 낮에는 각자 일터에서 근무하고 밤 늦게까지 연습하는 데도 표정들이 밝다. 한 번 가입하면 그만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 청주와 공주에서 오는 단원도 몇몇이 있다. 악기도 프로 관현악단 못잖게 구색을 갖추고 있다. 초보자도 언제든 환영한다. 단 음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면….

Q: 알피네는 어떤 오케스트라인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다. 단원들 간에 가족 같은 사랑이 넘치는 모임이기도 하다. 지휘자 손인환 선생이 ‘사람이 음악을 한다. 그 음악에 사랑이 없다면 누구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전할 수 없다’고 했다. 단원들 또한 같은 마음이다.

Q: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단원 개개인이 매월 3만원씩 내고 있다. 처음엔 손인환 지휘자가 운영하는 음악학원 건물 로비를 빌려 쓰다가 인원이 늘면서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전용연습실을 마련했다. 주택가 인근이어서 방음시설이 필수인데 공사비가 없어 단원들이 퇴근 후 흡음재를 사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다.

Q: 봉서홀은 1000석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처음엔 객석이 텅 비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 진행하다 보니 오겠다는 분이 많아 자신이 붙었다. 영화음악과 팝 등 귀에 익은 선율로 듣는 분들이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레퍼토리 선정에 신경 썼다. 전석 초대지만 멋진 연주를 약속 드린다. 창단 연주회를 통해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다. 천안시민들이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

Q: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단원들의 부담이 컸다.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해 기꺼이 내고 있지만 총단장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후원회도 모집하는 등 방안을 마련 중이다. 가족과 친구, 다른 울타리에 있는 음악동호회 등 성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장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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