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무엇이 보수·반동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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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국의 신문과 잡지에서 정치평론을 읽으면서 자문한다. 보수 반동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지위와 권력.돈이 없으므로 기득권 세력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의 생각이 보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 논란

예컨대 박정희(朴正熙)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온 세상이 그의 위업을 기리고, 심지어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마저 그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표명했다. 기념관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소한 문제 아닌가. 그는 이미 세상 사람의 마음 속에 큰 기념비로 서 있다.

한가지 朴대통령에게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혁명을 3년 정도 앞당겨 결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997년 외환대란이 닥쳐왔을 때 위기의 뿌리는 누적돼 가는 대일(對日) 무역적자에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5.16이 났던 61년은 옷감을 짜고 기계를 만드는 산업에서 지식.정보.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뒤였다.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 위해 주로 일본에서 기술과 생산재를 도입해 조립 가공하는 산업화를 하다보니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줄기는커녕 점점 더 크게 벌어지게 됐다.

일본의 엔(円)이 오르면 수출에는 유리하나 일본에서 수입하는 생산재 값이 뛴다. 엔이 내리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한국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반도체와 통신부문에서 첨단을 가게 됐으나, 전체적으로 일본에 멀리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개발독재정권이 수삼년 늦게 온 것을 개탄한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첨단기술을 한국이 과연 따라잡을 수 있을지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5.16의 평가가 이러하므로 그 주역 김종필(金鍾泌)씨를 항상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현실이 바뀌었으나 나는 그를 미완성의 대기(大器)로 보고 있다. 자연연령이 높은 것이 문제지만 인품과 교양, 경륜과 비전에서 JP만한 인물이 우리에게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없다.

왜 우리는 정치지도자를 폄하하는 데에 그토록 열을 올리나? 걸핏하면 청산이고 척결이고, 구시대 잔재 물러가라다. 큰 인물들이 할거해 자웅을 겨루고 있다면 또 모르되, 그저 고만고만한 검증 안된 인사들이 도토리 키재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나는 JP가 왕건인지 이방원인지 모른다. 수십년 전 어느 대학 졸업식에 나타난 JP를 1백m 밖에서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만남' 이다. 공인으로서 그가 쌓아온 것을 제대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말한 바 있다.

"김종필씨는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 JP를 어지러이 욕하는 논객들이 잠시 펜을 멈추고 이 말의 뜻을 새겨주기 바란다.

진보적 좌파와 양심세력은 누구인가. 이들은 엄혹한 현실에서 민주화를 위해 몸으로 부닥치며 싸웠던 인사들이다. 한국 사회는 이들이 쌓아올린 도덕적 권위를 정치권력을 넘겨줌으로써 보상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이렇게 태어났다.

특기할 일은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이들의 집권을 도왔다는 사실이다. 이 태생적 한계 때문에 개혁의 발목이 잡혀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주장은 실소를 자아낸다.

***독재 향수, 보릿고개 향수

한국에서 개혁은 무엇을 뜻하나. 권위주의적 개발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완전히 개방된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자는 것 아닌가. 진보.혁신.좌파의 목표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구현을 뜻한다면 그 걸 가지고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하는 것은 웃음거리다. 칠레의 피노체트가 이미 성취한 것이 좌파고 혁신인가?

옛 사람을 다시 보고 큰 일을 맡기기로 국민이 마음을 돌린다면 그것은 나라를 위해 다행한 일이 될 수 있다. JP가 차기에 무엇을 하건 안하건, 정치와 정치인을 생각하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는 것이 옳다. "수구 반동이 독재에의 향수…" 라고 욕하시는 분은 보릿고개에 대한 향수 때문인가.

김상기 <재미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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