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동남아 통화 일방차단 횡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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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 매리는 지난 24일 "공중전화 부스에서 필리핀 집에 한시간 이상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는다" 며 대구지방경찰청에 문의해왔다.

매리는 "다이얼을 돌리면 뚜뚜 소리만 날 뿐 대구시내 공중전화가 모두 먹통인데 영문을 모르겠다" 고 말했다. 이같은 사정은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찬가지다. 공중전화로는 필리핀.인도.베트남 등 동남아 10개 국가에 전화를 할 수 없다.

한국통신이 지난 14일 전국 14만5천여대의 공중전화 가운데 공항.대사관.대형호텔 등이 위치한 44개 주요 지역 4만여대를 제외한 11만8천여대에 대해 통화를 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측은 "동남아지역 국가들과 불법으로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 이같이 조치했다" 고 밝혔다.

통화차단 대상은 서울 17개, 부산 12개 전화국 등 동남아 산업연수생.불법 체류자가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 지역의 전화국 관내 공중전화기들이다. 통화가 정지된 10개국은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몽골.네팔.이란 등이다.

그러나 한국통신측은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아 이들 국가 산업연수생이나 여행객들이 큰 불편을 겪는 바람에 자국 대사관 등을 통한 문의와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제51차 국제청년회의소(JCI)아시아.태평양 대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에서는 요즘 동남아 국가 회원들로부터 "국제통화가 안된다" 는 문의가 쇄도, 대회 조직위원회가 해명에 애를 먹고 있다.

JCI 아태대회 박상현 대변인은 "조직위에서 통화차단 사실을 몰라 적절한 안내를 해주지 못했다" 며 "이번 대회 참석 외국인 4천5백명 중 해당 10개국에서 온 손님이 1천여명에 달해 국제 망신이 우려된다" 고 말했다.

한편 한국통신측은 이들 지역 출신 국내 체류자들이 ▶공중전화선에 가정용 전화선을 연결▶카드나 동전 투입구에 이물질 삽입▶송수화기 라인의 상호 접지▶공중전화 카드 조작 등의 방법으로 불법 통화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인권보호 단체인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일부 불법 사용자들 때문에 동남아 국제 공중전화를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 며 "이른 시일 안에 통화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고 말했다.

한국통신 공중카드사업부 노정숙 과장은 "불법 통화가 불가능하도록 기능보완 작업을 하고 있으며 가급적 빨리 통화차단을 해제하겠다" 고 밝혔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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