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포도를 따먹는 다이아몬드 원숭이 보셨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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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08면

1 샤넬 J12-TRM 3-4 Ouverte 3 2 베르사체 DESTINY SPIRIT3 부쉐롱 sheherazade4 샤넬 J12 Jewerly 1 5 드 그리소고노 Instrumentino6 스와롭스키 디라이트ㆍ레드닷 어워드 2010년 베스트 디자인상7 부쉐롱 crazymajoliefondblanc8 메이스터 반지9 보가트 반지10 엘리니 호랑이 반지 11 스티븐 웹스터 복어반지 12 쇼파 북극곰 반지 스틸 13 쇼파 개구리와 왕관 반지

빙산 끝에서 북극성을 바라보는 어린 북극곰, 떼지어 몰려다니는 물고기, 뭉글뭉글 먹물을 뿜는 문어, 큼직한 집게로 위협하는 가재와 게, 수염을 길게 늘인 새우, 포도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원숭이들, 왕관을 든 개구리 왕자,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공작, 줄지어 나는 학…. 동물원이나 사파리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올 스위스 바젤 시계 주얼리 박람회에서 신제품으로 선보인 주얼리 이야기다. 신비하고 역동적이며 위험하기까지 한 동물들이 한데 모여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신나는 경험이다.

김성희의 유럽문화 통신: 세계 최고의 시계·보석박람회 2010 바젤월드를 가다

14 쇼파 원숭이 목걸이

상상의 동물을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
3월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올 바젤월드. 전시관을 노아의 방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동물을 주제로 한 주얼리가 많았다. 영국 주얼리를 대표하는 스티븐 웹스터(Stephen Webster)는 실존 동물 외에 상상의 동물을 독특한 스타일로 과감하게 표현했다. 호주 회사 아우토레(Autore)는 자신이 생산하는 남양 진주를 풍부하게 사용해 바다 밑 세계에 빛을 주었다. 보색 대비의 유색 보석으로 화려하게 제작된 러시아 회사 주얼리 시어터(Jewelry Theater)의 기이한 공작새와 다람쥐, 해와 달 등은 실제와 똑같이 제작된 미니어처 극장 안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하듯 무대 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추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곳은 스위스 주얼리 워치 브랜드 쇼파(Chopard)다.

13 쇼파 개구리와 왕관 반지17 보가트 반지

올해 창립 150주년을 맞아 나비에서 원숭이까지 동물을 주제로 150개의 크고 작은 주얼리를 선보였다. 오닉스로 표현된 밤하늘 아래 포효하는 늑대 펜던트는 엘턴 존이 구입했다고 한다. 루비로 표현된 포도를 다이아몬드 원숭이가 따먹는 모습을 형상화시킨 목걸이도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냈다. 또 2000개가 넘는 보석을 사용해 물방울 사이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표현한 목걸이는 올 박람회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꼽혔다. 이런 하이 주얼리는 바젤월드라는 기회가 아니면 보기 힘들다. 그 외에도 15종의 동물을 사용한 주얼리 워치는 각각 리미티드 컬렉션으로 한정 판매된다.

16 쇼파 물고기 목걸이

시계의 모든 기술 한 곳에 담은 작품도
주얼리뿐 아니라 시계 기술 면에서도 쇼파는 주목받았다. 투르빌리옹 무브먼트를 사용한 쇼파의 올 인 원(All in one)이라는 시계는 두께가 무려 18㎜나 되는 두꺼운 손목시계로 모든 시계 제작 기술이 한 시계 안에 다 들어가 있다.

또 회중시계와 손목시계를 겸용할 수 있는 신제품도 선보였다. 2000년 세라믹 시계로 시계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패션 회사 샤넬은 10년 후 또 한번 기존의 시계 제작 기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시계를 내놨다. 줄리오 파피(Giulio Papi)가 디자인한 J12 RTM은 일반적으로 시계 옆에 나온 크라운을 다이얼 위로 이동시킨 파격적인 제품으로 크라운은 시간을 바꿀 때에만 눌러서 튀어나오게 하고 평소에는 눌러 넣어 표면에 굴곡을 느낄 수 없게 했다.

분침은 다른 시계들과 마찬가지로 우회하다가 10분에 위치한 크라운에 부딪히면 오던 방향으로 역행하기 시작해 20분에 위치한 크라운 밑부분까지 이동한다. 분침이 역행하는 이 10분간은 5시와 6시 방향 사이에 있는 확대 창에서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숫자를 표시해 준다.시계 분야에서 올해 가장 두드러진 유행이라면 다이얼과 베젤, 그리고 벨트 색상의 일치라 볼 수 있다. 롤렉스와 오메가는 물론 스와롭스키나 레이몬드 웨일, 그리고 발렌티노나 페라가모, 베르사체 같은 패션 회사 시계도 이 트렌드에서 빠지지 않는다. 올해도 여전히 지름 40㎜ 이상의 큰 시계가 스위스 시계 트렌드의 주를 이루지만 패션회사들은 오히려 작은 케이스를 올 신제품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바젤월드는 여느 주얼리 박람회와 달리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관람이 가능해 많은 사람이 몰린다. 그야말로 누구나 입장할 수 있으니 보안에 관한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의 어떤 박람회도 바젤이 자랑하는 숫자-즉 전 세계에서 온 3000여 명의 기자와 10만 명의 방문객-를 능가하지 못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금값 때문인지 주얼리 제품의 사이즈는 줄어들고 지난해보다 참여 회사도 줄었지만, 매일 저녁 바젤월드의 중앙 광장에는 전 세계의 바이어와 제조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맥주 한잔과 소시지 구이를 먹으며 하루의 힘든 일정을 달랬다.


이탈리아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디자이너. 유럽을 돌며 각종 전시회를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 『더 주얼』(2009)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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