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소신탈당 손가락질 않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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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구 60만명에 불과한 미 북동부 버몬트주의 67세 상원의원이 세계사에 영향을 미칠 사건을 일으켰다. 미국은 제임스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에 몇가지 주목할 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선 스캔들이나 음모를 연상시키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당의 공작" "노(老)정치인의 소영웅주의" 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그게 아니다.

피해 당사자인 공화당에서 "탈당의 변(辯)은 거짓말" 이라는 등의 비난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온건파 공화당의원들은 탈당 전날까지 "공화당에 남는 것이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욱 효과적" 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그들은 그저 아쉽다는 말만 하고 있다.

최대 피해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나는 존경심을 가지고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탈당을 반대한다" 고 점잖게 논평했다.

공화당원 사이에선 "제퍼즈 의원은 지난해 11월 선거 때 당 본부에서 받았던 지원을 반납해야 한다" 는 비판도 나오지만 "배신자" "위선자" 라는 비난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언론에선 탈당 이유는 그대로 접수하고 사태의 정치.사회적 파장에 초점을 모은다. 제퍼즈 의원의 의정활동으로 보아 일단 그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대선 때 서민층도 아우르는 '온정적 보수주의' 를 공약한 것을 암시하면서 문제에 접근했다. 신문은 사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선 약속보다 덜 중도적(moderate)이었으며 제퍼즈 의원의 탈당으로 대가를 치를 것" 이라고 지적했다. 지역구에서도 "지역구를 팔아먹은 자" 라는 반응은 거의 없다.

어느 유권자는 "나는 평소에도 제퍼즈 의원의 용기를 선망해 왔다" 고 말했다. 신문들은 제퍼즈 의원의 재선가도가 파란 불이라고 분석한다.

당적변경에 대한 후대(厚待)에 사정이 있기는 하다. 버몬트주는 동성애자 권리법을 제정할 정도로 진보적이다. 많은 민주당원들이 제퍼즈 의원을 찍었다. 다른 주라면 반응이 달랐을지 모른다.

더구나 그가 야당에서 여당으로 탈출했다면 유권자의 시선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제퍼즈 의원은 여당을 박차고 나왔고 명분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철새론' 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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