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 역사왜곡 국제법 위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일간 어두운 과거사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오늘의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해, 한.일간의 선린우호관계가 파국에 이르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위반에 대한 간섭은 合法

한 국가가 자국 국민에게 어떤 내용의 교육을 하느냐는 그 국가의 국민에 대한 대인적 통치권의 행사로서, 이는 그 국가의 국내문제에 속한다. 따라서 타 국가는 '국내문제 불간섭의 원칙' 에 따라 이에 간섭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국내문제 불간섭의 원칙' 에는 몇가지 예외가 인정되며, 그러한 예외에 해당돼 합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국제법 위반에 대한 간섭' '조약의 규정에 의한 간섭' '인도를 위한 간섭' '간섭에 대한 반대간섭' 등이 있다.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검인정하는 행위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항의는 '국제법 위반에 대한 간섭' 으로 합법성이 인정된다.

첫째로, 일본 정부의 행위는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을 위반한 것이다. 일본은 1905년 강박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정미7조약을 체결해 내정권을 강취했으며, 이어 1910년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을 일본에 불법적으로 병합했다. 한국을 병합한 일본은 한국에서 온갖 수탈과 약취를 해갔으며, 한민족 말살정책을 자행했다.

65년에 한.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해 위에 든 일본의 대한침략조약이 모두 이미 무효이며, 1905년 이후 일본의 한국 지배는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지배임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가 불법적인 한국 지배에 저촉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한 행위는 한일기본조약 제2조를 위반한 것이 된다.

둘째로,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한 행위는 45년의 '무조건 항복문서' 를 위반한 것이다.

한국은 43년 1월 27일의 카이로 선언으로 일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이 연합국에 의해 공약됐고, 이는 45년 7월 26일의 포츠담 선언에 의해 재확인됐으며, 45년 8월 15일 상기 선언을 수락하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선언' 에 의해 한국은 일본의 불법통치로부터 벗어났다. 무조건 항복선언은 45년 9월 2일 '무조건 항복문서' 로 성문화해 연합국과 일본의 대표에 의해 서명됐다.

카이로 선언을 수락함으로써 일본은 당시 한국이 '일본의 폭력 및 탐욕에 의해 약취' 됐다는 것과 한국민이 '일본의 노예상태' 에 있다는 것을 승인했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가 무조건 항복선언에 의해 승인된 사실에 저촉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한 행위는 국제법 위반행위가 되는 것이다.

***교과서 재수정 수용해야

셋째로,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한 것은 66년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국제인권규약' 을 위반한 것이다. 동 규약 제13조 제1항은 "당사국은 교육에 의해 모든 사람이 효과적으로 자유로운 사회에 참가하고, 모든 국민간의 이해, 관용과 우호를 촉진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 합의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한 행위는 상기 규정 중 일본 국민이 '모든 국민간의 이해, 관용과 우호의 촉진' 을 가능하게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요컨대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검인정하는 행위는 한일기본조약, 무조건 항복문서, 그리고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한 행위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항의는 '국제법 위반에 대한 간섭' 으로 국제법상 합법적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이 선량한 이웃에 대한 도전이고 전 인류에 대한 모독이기에 앞서 국제법 위반행위임을 자각, 교과서를 재수정해야 한다.

김명기 명지대 교수 ·법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