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江주석급 대우받는 陳총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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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해 5월 천수이볜 총통 취임식 취재를 마친 외국 기자들이 야당이 된 국민당(國民黨)을 방문해 의원들과 마주앉았을 때였다.

기자 1: "국민당의 통일 방안은 뭔가. "

의원 1: "평등.호혜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다. "

기자 2: "자본금 1억달러의 회사가 1백억달러짜리 회사와 대등합병을 하겠다면 가능하겠는가. "

의원 2:(잠시 침묵한 후) "원칙이 그렇다는 얘기다. "

기자 2: "불가능을 주장하는 것은 합병 의사가 없다는 얘기 아닌가. "

의원 2: "……. "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은 이 원칙을 가장 앞장서서 받아들였다. 1979년 대만과의 단교는 중국을 '중국 인민' 을 대표하는 유일 정권으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지난해 陳총통이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했을 때 미국이 그를 호텔에 사실상 '연금'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번에 뉴욕을 방문한 陳총통은 97년 뉴욕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중국 주석과 '같거나 한 단계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 陳총통은 江주석이 사용했던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묵었다. 비행기 트랩 아래 주단이 깔리고 순찰차 네대가 호텔까지 호위한 것도 江주석과 같다.

그러나 만난 인사와 활동에선 차이가 난다. 江주석은 IBM.AT&T 등 기업관계자만 만났다. 그러나 陳총통은 기업인들은 물론 공군 전용기편으로 워싱턴에서 날아온 24명의 의원들과도 만났다. 의원들의 수송경비는 미 공군측이 부담했다.

陳총통이 감격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22일 미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극히 만족한다" 고 거듭 치사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선 흥분을 누르기 어려운 듯 "나는 뉴욕을 통과한 최초의 중화민국 총통" 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런 움직임에 짤막한 비난성명을 냈을 뿐 관영매체를 총동원한 비난 공세는 유보하고 있다. 환구시보(環球時報).중국경제시보 등 중국 언론들은 "즉각적으로 대항할 필요는 없다" 는 논조의 사설을 게재했다. 추이를 지켜본 뒤 대응 강도를 조절하겠다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콩의 정치평론가 리이(李怡)는 "양안 전쟁의 승리자는 결국 중국이라는 자신감의 표현" 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이제 '카우보이 미국' 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기 시작한 것일까.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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