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영화계 "일본식 용어 이젠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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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이번달 우리 극장 방구미는 이렇게 짰어. " "우리 영화사에선 덴삐끼를 인정할 수 없다. "

영화 배급업자 사이에서 흔하게 주고 받는 대화다. 여기서 방구미(番組)는 일반극장에서 상영할 영화의 프로그램을 짜는 일, 덴삐끼(天引き)는 극장측에서 배급사에 전달할 수익 가운데 간판.전단 등에 들어간 경비를 제외하는 것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다.

"올해 몸비는 별로 좋지 않았어" "저 극장은 아시바가 튼튼하지 않아" 등등. 몸비(物日)는 방학철.추석 연휴 등의 극장가 성수기를, 아시바(足場)는 영화사.극장 등의 경영상태를 뜻한다.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도 영화계에선 이렇듯 일본식 은어를 밥 먹듯 쓰고 있다.

지난 3월 발족한 한국영화배급개선위원회(위원장 최용배)가 이같은 일본식 용어를 순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극장가에서 통용되는 일본식 어휘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단 배급 관련 용어를 정리하고, 차후에 촬영현장.마케팅 분야의 은어도 쉬운 우리 말로 바꿀 생각이다. 영화 전공 대학원생을 뽑아 자료 취합에 나섰고, 국어학자들에게 자문해 적확한 한국말을 찾기로 했다.

최위원장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관례적으로 쓰는 말이 너무 많아요. 크게 보면 한국영화의 주체성을 찾는 일이지요" 라고 말했다. 건설현장 못지 않게 일본어가 남용되는 영화계의 인습을 고쳐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 애써 고친 말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 않은가. 그는 연말쯤엔 배급업계에서 일본말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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