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혼수품1호' 재봉틀 다시 한번 주부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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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재봉틀이 돌아왔다.

구식 가재도구로 취급받아 가사 교과서에서 사라졌던 재봉틀이 주부들이 갖고 싶은 가전제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만드는 회사는 전기재봉기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는 여전히 재봉틀이다.

주부 장선동(27.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씨는 지난달 재봉틀을 샀다. 성남시 농업기술센터의 양재코스에도 등록했다.

장씨가 처음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은 앞치마. 다음엔 원피스 만들기에 도전했다. 가지고 있던 정장의 치수대로 본을 뜨고 원하는 색깔의 천을 떠다가 만들었다. 안감.겉감.실.지퍼 등 재료비에 차비까지 합쳐 총 재료비는 4만원이 채 안들었다.

"남편이 제가 만든 원피스를 보더니 지난해 58만원 주고 산 정장보다 더 예쁘다며 자기 바지도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

새내기 주부 윤효진(28.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씨는 재봉틀을 혼수품 목록에 포함시켰다. 어버이날엔 그 재봉틀로 시댁 소파 천갈이를 해드렸다.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다며 시부모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몰라요. 최고급 천을 사용했는데도 15만원밖에 안들었어요. "

이처럼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재봉틀을 찾는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가정용 재봉틀 시장의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라더 미싱' 의 경우 98년 이후 꾸준히 판매가 늘고 있는 추세. 98년 4만5천대였던 판매 실적이 2000년엔 5만2천대로 늘어났으며 2001년에는 6만2천대를 예상하고 있다.

부라더미싱 홍장호(42)가전사업부장은 "70년대 혼수품 1호로 각광받던 재봉틀이 80년대 들어 컬러TV의 등장과 급격한 경제성장 등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사라졌다" 며 "그러나 90년대 들어 합리적인 소비 패턴과 개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커짐으로써 재봉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고 말한다.

여성복지회관이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옷 만들기는 빠지지 않는 과목. 성남시 여성복지회관에서 양재교육을 담당하는 김미자(43)씨는 "정원 25명의 '현대의상' 과목의 경우 등록 개시 하루만에 모두 마감될 정도로 열기가 높다" 며 "과거엔 부업을 목적으로 하는 40~50대 주부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자신과 가족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취미로 배우는 주부들이 많다" 고 말한다.

양재 교육을 받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주요 연령대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최근 주부 연예인들이 앞다퉈 홈패션 책을 출간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DIY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의 발달도 옷만들기의 대중화에 한몫을 한다. 일반인들이 가장 만들기 어려워하는 옷본 등을 제공하고, 구하는데 발품이 필요한 옷감과 부자재를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문을 연 '엄마가 만든 옷' (http://www.mommymade.pe.kr)의 조영라(34)씨는 "하루 방문자가 2천명이 넘는다" 면서 "방문자가 늘면서 옷본과 재료를 대신 구입해 배달해 주는 코너와 직접 만든 옷을 인터넷에 띄워 자랑하는 코너가 가장 활기를 띠고 있다" 고 전했다.

이외에 다솜이네집(http://www.dasom.pe.kr),

패턴하우스(http://patternhouse.pe.kr),

하이홈(http://cloth.hihome.com),

꼬지(http://www.coji.com)등 옷본과 만드는 법을 설명한 사이트도 인기다.

조씨는 "동대문 시장과 광장시장에서는 모든 종류의 원단을 마 단위로 살 수 있고, 단추.지퍼 등도 낱개로 판다. 재봉틀 가게가 모여 있는 서울 을지로 4가의 주교동 미싱상가에서는 백화점보다 싼 가격으로 재봉틀을 살 수 있다.

부라더미싱.라이온미싱 등 재봉틀 판매회사에서는 제품을 구입하면 2~3개월 동안 무료로 양재 교육을 시켜 주고 있다" 고 조언했다.

박혜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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