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임시보호소 운영 홍대현·정애영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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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봉사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는 계획을 '실천' 하자고 용기를 낸 것 뿐이에요. " (남편)

"사람들이 그래요. '돈이 얼마나 많아서 저러나'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요. 사실 저는 우리가 항상 '부자' 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웃음)" (아내)

공무원으로 시청에 재직하다 현재 9년째 건축업을 해온 홍대현씨(47), 성당을 다니며 봉사생활을 해온 주부 정애영씨(43). 결혼생활 21년째인 이들은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대학생인 딸 경미와 고3생인 아들이 커가는 걸 흐뭇하게 지켜봐온, '평범' 그 자체인 부부다.

남다른 한 가지가 있기는 하다. 1999년 12월, 평소 부부가 가져온 뜻대로 영.유아 임시보호소 '해뜨는 집' 을 연 것. 모아온 재산에서 1억원을 떼어 집에서 가까운 단지에 18평짜리 아파트를 마련, 부모의 사정상 대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0~1세)를 맡아왔다.

"1억원이면 내가 은행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는 홍씨. 하지만 해뜨는 집은 오히려 주변사람들의 '응원' 을 받아 6월 초에는 넓은 단독주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 '해뜨는 집' 은 우리 것이 아니다" 라고 몇번씩 강조했다. 봉사나 후원금으로 힘을 보태고 있는 사람들이 1백명은 족히 넘고, 이번에 새로 마련되는 이 곳은 아예 서울대교구 가톨릭재단 소유로 등록된다는 것이다.

정씨는 '해뜨는 집' 운영위원이다. "우리가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낀다" 는 정씨는 "앞으로 형편이 어려운 지역주민들을 위해 탁아방도 열 계획" 이라고 했다.

엉뚱하게도 '해뜨는 집' 마련이 적극 추진된 것은 2년 전 홍씨가 받은 건강검진 때문이었다.

삶의 중턱을 넘어선 것을 문득 깨달은 그는 '돈은 어떻게 쓰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는 생각을 깊이 했다고 한다. 아내는 흔쾌히 뜻을 같이 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가 진정한 유산이 될 수 있겠죠. 우리가 한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에 한뼘이라도 도움이 되라' 는 걸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 이들의 작은 바람이다.

새집에 들어갈 아기 욕조를 사기 위해 나란히 을지로 상가 나들이에 나선 이들 부부. "재벌이 아니지만 봉사 때문에 우리 삶을 포기한 것은 더욱 아니다" 라며 "우리는 친구도 자주 만나고, 가끔 부부여행도 즐기는 그런 사람들" 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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