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홀] 어색한 연기·줄거리 '썸머 타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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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6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썸머 타임' (사진)은 인기그룹 룰라의 멤버였던 김지현을 배우로 기용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내일로 흐르는 강' (1995년), '쁘아종' (97년)으로 주목받았던 박재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1980년 운동권 수배자 상호(유수영)가 한 도시의 목조건물 이층으로 숨어든다. 우연히 그는 방바닥에 1층이 내려다보이는 구멍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 구멍으로 그는 전직 경찰인 남편 태열(최철호)의 강박적인 성격 때문에 집에 갇혀 사는 아랫집 여자 희란(김지현)을 훔쳐보며 강한 성적 충동을 느낀다.

영화는 이렇듯 군부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80년대의 정치상황을 뒷면에 깔고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인물을 불러내 사회성 있는 영상을 낚으려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런 의도는 오간데 없고 여주인공의 적나라한 노출과 섹스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계속된다. 파격적인 장면을 곳곳에 배치해 '섹스' 로 승부를 걸겠다는 포석이 노골적이다. 게다가 설득력 없이 이야기가 이어지고 주인공들의 어색한 연기 탓에 야한 장면마저 제대로 '효과' 를 발휘하지 못한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단순한 에로물이 아니다. 곳곳에 장치해 놓은 코드를 읽다 보면 사회적 문제의식이 다분히 녹아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는 제작진의 변(辯)이 공허한 수사(修辭)로 들릴 뿐이다.

부부교환(스와핑)이라는 사회문제를 다루려다가 정체 불명의 에로물로 끝난 '클럽 버터플라이' (김재수 감독)가 연상된다.

한국영화가 부흥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나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상업적 욕심만 삐쭉 고개를 내민 작품을 대할 때 관객은 당혹스럽다. 우리는 언제 멋들어진 에로영화 한편을 볼 수 있을지…. 영화에 임하는 제작진의 정직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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