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와티·군 급속 밀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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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 탄핵처리를 둘러싸고 인도네시아의 정국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침묵을 지키던 군부가 최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사진)과 한 목소리로 와히드를 압박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 시절 최고 권력기관이던 군부는 와히드가 집권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최근 메가와티와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는 것이다.

군 수뇌부는 지난 20일 "군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에만 충성한다" 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겉으로는 정치적인 중립선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와히드를 압박하는 것이다.

와히드는 최근 들어 자신이 군 최고통수권자임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군부에 충성을 요구해왔는데 군부가 충성맹세 대신 중립을 선언한 것은 와히드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고 등을 돌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부는 이날 와히드가 탄핵을 피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할 것이라는 소문에도 언급, 그같은 조처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메가와티는 21일 국방부 창립 기념식에서 "권력을 축적하기보다 현안을 해결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며 은근히 와히드를 비난하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메가와티의 이날 연설은 비록 와히드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군부 앞에서 우회적으로나마 군 최고통수권자인 와히드 대통령의 사임을 사실상 요구한 것이어서 파문이 크게 번질 전망이다.

군부와 메가와티의 밀착은 19일부터 가시화했다.

이날 엔드리아르토노 수타르토 육군참모총장과 메가와티는 긴급히 만나 정국안정책 등을 논의했다.

이 회동은 수타르토 총장이 하루 전인 18일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메가와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일정을 앞당겨 급히 귀국하도록 요청한 뒤 이뤄진 것이어서 군부가 메가와티 지지를 결심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소식통들은 메가와티와 수타르토의 면담에서 와히드가 군 수뇌부 개편 카드를 활용해 정국을 돌파할 가능성 등에 관한 대책이 집중 논의됐다고 전했다.

메가와티와 군부의 협공에 밀린 와히드가 과연 어떤 카드로 대응할 것인지 궁금한 가운데 자카르타 등에서는 와히드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다시 벌어지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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