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믿을 슈뢰더, 부시등과 밀담공개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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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3월 말 미국을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사진) 독일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등과 나눈 '적나라한' 비밀대화 내용이 공개돼 국제적인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외교 기밀은 위르겐 크로보크 미국주재 독일 대사가 3월 31일 '대외비' 로 본국 외무부에 보고한 것으로 지난 주말부터 독일 언론에 공개됐다.

슈피겔지가 2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화록에는 ▶슈뢰더 총리와 부시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의 계속적 군비확장에 책임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미국과 독일은 러시아의 막대한 외화가 외국지원용으로 흘러나가는 한 러시아에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다▶파월 국무장관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국가수반을 '전망 없는 인물' 로 판단하고 있다▶슈뢰더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를 '중동에서 가장 힘없는 지도자' 로 보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이같은 대화록이 공개되는 바람에 그간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외교역량을 강화하려던 독일 정부나 슈뢰더 총리로선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미국에는 '비공개 대화까지도 신경써야 하는 못믿을 사람' 으로, 그간 돈독한 우의를 과시해온 푸틴 대통령에겐 '뒤에서 딴말 하는 사람' 으로 낙인 찍힐 판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아랍권을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모색하던 독일 정부는 양측 모두로부터 '믿을 수 없는 양다리 외교' 란 비난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됐다.

야당도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아직 각국 정부의 공식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으나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의원인 니콜라이 코발료프는 "향후 독.러 관계에 부정적인 신호" 라고 평가했고, 보리스 넴초프 의원도 슈뢰더의 발언을 '파괴적' 이라고 언급해 사태가 국제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진상조사팀을 구성해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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