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산적 정치의 새모델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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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동 여당인 민주당.자민련과 야당인 한나라당의 경제통들이 정부의 경제 장관들과 지난 주말 1박2일간 토론회를 한 후 6개항의 발표문을 내놓았다. 이 발표문을 보면 여야와 정부 3자는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인 구조조정.공적자금과 기업환경.서민생활.국가채무 등 거의 모든 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발표는 구체적인 합의보다 원칙론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동안 끝없는 정쟁으로 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지목돼 온 여와 야가 한 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입장을 교환하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번 토론회에서 여.야.정은 6월 임시국회에서 재정건전화법 등 재정 개혁 3법의 제.개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정, 도산(倒産)관련 3법의 통합을 추진키로 했다.

이는 재정 적자 개선과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시급한 사안인 만큼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하는데 그동안 정쟁 때문에 지연돼 왔던 사안들이다. 사실상 공적자금 성격을 띤 공공자금을 이용한 구조조정 지원을 축소키로 의견을 모은 것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 무려 30조원에 이르는 공공자금이 국회 동의 등 아무런 견제없이 구조조정에 동원된 데 대한 지적이 많았다는 점에서 구체적 후속 논의에 기대를 걸게한다. 이밖에도 공적자금 운용의 투명성 확보와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환경 개선 등의 문제를 놓고 여야가 계속 논의키로 의견을 모은 것도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물론 주요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여야가 인식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국가 채무를 놓고도 야당은 "사실상 1천조원에 달한다" 는 주장을 되풀이한 반면 여당측은 1백19조7천억원에 불과하다고 반박, 계속 논란거리로 남게 됐다.

현대 문제나 재벌 정책 등은 형식적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기업활동에 대한 현 정부의 개입 수위와 방법, 그리고 기본 철학 등에 대해서도 양측의 인식은 큰 거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토론으로 문제 해결의 노력을 보인 점이다. 우리 경제는 현재 심각한 경기 침체와 수출 부진.물가 상승으로 고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경제 현안을 함께 고민하는,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은 다소나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야는 모처럼의 이런 토론회를 일과성 이벤트로 끝내지 말고 구체적인 후속 실천 방안을 이끌어내도록 해야 할 것이며 사회.환경 등 다른 분야와 정치 개혁 분야까지 확대해 나갔으면 한다.

아쉬운 것은 과거에도 여야가 사석에서는 뜻을 함께 하면서도 일단 정치 쟁점화하면 당리당략에 휩쓸려 원내에서는 싸움박질만 했다는 점이다. 이번 토론회가 이런 풍토를 지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따라서 이같은 토론 분위기가 원내에서도 정착될 수 있도록 생산적인 원내활동의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긴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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