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충족 보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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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런 영화장면이 있다. 일에만 몰두하던 남편은 부부생활에서 발기부전이 되고 부인으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한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전 남편' 의 처지가 된다.

지하철역 의자에서 자면서도 과거의 여자에게만 향하는 마음을 지울 길 없다. 동전을 빌려 부인 집에 전화를 건다. 수화기에서는 부인의 핀잔과 함께 다른 남자를 만나 밤일을 하며 질러대는 괴성만 들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상대에게 만족을 주고 싶어 한다. 상대의 만족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 한다. 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상대의 기분을 맞추거나 피학성 변태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괴성을 지르는 이들이 많고, 사실과 달리 자신을 조루증 환자로 생각하거나 괴성 듣는 시간을 길게 갖고 싶어하는 이들의 무의식 속에는 가학성 변태 기운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란 괴상한 동물은 육체로만 만족하지 못한다. 성인용품점의 자위기구나 유사한 역할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향한 마음을 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육체와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끊임없는 긴장과 탄력이 가미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권태와 색다른 것을 원하는 바람이 찾아든다. 인간은 만족하는 척할 수는 있다. 일시적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영원히 만족할 수는 없다. 설사 평범한 의미에서 만족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누구인가" 라는 궁극적인 질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영원한 만족은 있을 수 없어

그렇다면 뒤집어서 "꼭 만족해야 하느냐" 고 물어보자. 사실은 만족이 몸과 마음에 좋지 않단다. 밥은 부족한 듯이 먹고 잠도 부족한 듯이 취해야 좋다. 음식과 잠은 반드시 취해야 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삶에 있어서의 욕망은 충족 보류로 대체할 수 있다. 포도주를 오래 발효시킬수록 깊은 맛을 내듯이, 욕망도 바로 충족시키지 않고 발효시키면 불가사의하게 스스로 승화되는 도리가 있다.

연꽃의 양분은 하늘나라 선녀의 화장품이 아니다. 진흙이다. 열반의 원료는 도솔천의 감로수가 아니다. 번뇌에 찬 윤회이다. 욕망을 묶고 가두고 발효시키면 열반이 된다. 중생의 충족 보류는 궁극적인 대만족으로 회향될 수가 있다.

***오래 발효시킬수록 깊은 맛

한 청년이 대전에서 하숙집을 정했다. 주인집 초등학생 딸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어른이 된 후에 짝이 되자" 고 농담을 주고 받았다.

청년이 하숙집을 떠난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이제는 중년이 돼 버린 그에게 예전에 머물던 하숙집 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데 자기에게 청혼하는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어떻게 해야겠느냐는 것이다.

약간 흔들리는 마음을 억누른 그는, 과거의 약속은 농담이었으니 시집 가서 잘 살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백혈병이 발견됐다. 그는 병원비를 제공하고 장례식까지 보살펴 주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일생을 같이 산 이상의 특별한 정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행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슬펐다. 구혼 제의에 동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삶의 의미가 욕구와 충족의 도식에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지금 출가 수행 중이다.

지난 주의 신문에도 위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렸다. 한 중학생이 14년 후 27세가 되어서, 12세 연상의 여선생님과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 변하지 않는 마음, 기다림, 주위의 시선을 과감히 돌파하는 결단과 용기를 대단히 여기지만, 바람이 그대로 충족됐다는 점에서는 불만족이다.

텔레비전에 유명인들이 어린 시절에 짝사랑하거나 존경했던 이들을 만나게 해 주는 프로가 있다. 카메라 앞에서 무척 반가운 시늉을 한다. 그런데 연락처를 알고 난 뒤에, 다시 만나는 이들은 소수라고 한다. 왜일까. 마음 속에 원하는 그림과 충족된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칼로 비유한다. 취모검(吹毛劍)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도 자를 만큼 잘 드는 칼이다. 이것으로 애착의 정을 자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자름이 단순한 망각은 아니다. 욕구를 충족 보류로 발효시켜서 큰 자비로 변환시키는 깨달음의 작업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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